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부모와 먼저 만나고 형제 자매를 접한다. 소꿉친구를 만나 놀다가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직장에서도 동료를 만난다. 인간은 가족, 이웃, 사회 공동체, 국가 공동체와 관계를 확대하면서 생활하는데 이를 생활원리 확대의 원리라고 부른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서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러한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나아가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종교적으로 초월적인 절대자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인간의 삶도 결국 타인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이 모든 관계에는 바람직한 도덕율이 존재한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이러한 관계망이 흐트러지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가족 간에도 도덕률이 흐트러져 불화의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혼율이 증가하고 파탄 가정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친구 간에도 끈끈한 우정은 사라지고 이해관계로 변질되고 있다. 사회 공동체 내의 경쟁은 날로 치열하고 인간의 관계는 더욱 이기적인 관계로 변질되고 있다. 사회 공동체 내의 개인간뿐 아니라 집단간에도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인간의 관계망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더욱 흐트러지고 있다.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가 오히려 높다니 이상한 일이다. 산업화 근대화의 역설적인 비극이 도처에서 발생한다.

이 같은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인간이 공동체 내의 타인과의 관계도 바람직하게 설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타인으로부터 약간의 공격만 받아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타인에 대한 극한 감정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이 자존감이 결여되고 그런 사람일수록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하다. 독재자일수록 자존감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리학자들은 인간이 타인과의 화해하는 방식을 제시하지만 그 실천은 어렵다. 타인과 불화의 증가는 사회 공동체의 위기구조를 양산한다.

부활절이 가까이 오고 있다. 모든 종교가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용서는 사실상 어렵다. 용서라는 말은 쉬워도 인간의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누구나 트라우마로 오래 간직한다. 용서는 결국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남을 미워하면 상대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망가진다. 주변에는 자신을 괴롭힌 상대를 죽을 때까지 보복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운 상대가 죽기 전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보았다. 자신부터 비워야 용서가 가능하다. 용서는 상대의 잘못된 행위만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행동과 인격의 탈동일시(脫同一視)라고 부른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법언과 같다.

타인과 화해하기 위한 용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용서는 마음만 고쳐먹으면 어렵지 않게 할 수도 있다. 먼저 타인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는 오해로 인한 불화가 많고 그것이 때로 평생 갈 수도 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는데 상대는 그것을 ‘나의 자랑’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까지 있다. 모두 오해가 빚은 결과이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지하철에 어린아이 두 명을 데리고 전철을 탄 아빠가 있었다. 차가 움직이자 두 아이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울부짖었다. 차안의 승객들은 버릇없이 잘못 기른 이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비난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승객들은 그 아이들이 교통사고로 숨진 어머니 장례를 치른 직후였음을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용서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용서는 내가 상대를 향한 결심이기에 우선 나부터 상대를 용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