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

바야흐로 4월 1일, 오늘은 만우절이다. 이 날 만큼은 누구나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거나 장난을 쳐도 괜찮다고 여긴다. 이 날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히 알려진 것은 선물을 주며 장난치던 서구의 풍속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프랑스에서는 1563년까지 정월 초하루가 3월 25일이었고 신년 축제의 끝 무렵인 4월 1일에 선물을 교환하며 즐기던 풍습이 있었다. 1564년부터는 정월 초하루가 1월 1일로 바뀌었는데, 이를 몰랐던 이들에게 짓궂은 사람들이 4월 1일에 신년 선물을 주며 장난쳤던 일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날을 정해 놓고 장난을 치던 것은 비단 서양의 풍습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옛 문헌들을 살펴보면 눈 오는 날, 장난치던 신설하례(新雪賀禮)의 풍속이 발견된다. ‘세종실록’ 즉위년 음력 10월 기사에는 첫 눈이 내리자 태종(52세)이 눈을 쓸어 나무 상자에 담아 환관 최유에게 형 정종(62세)에게 좋은 음식이라고 속이며 갖다 주라 했고, 정종이 그 의미를 이미 알아차려서 최유를 잡으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눈 상자’를 모르고 덜컥 받으면 받은 사람이, 기미를 알아채고 상자 가져온 이를 붙잡으면 상자 보낸 이가 한 턱 내는 풍습, 속는 이나 속이는 이나 모두 한바탕 웃고 즐기는 그야말로 유쾌한 장난인 것이다.

유쾌한 장난은 비단 눈 오는 날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제현의 ‘역옹패설( 翁稗說)’에는 충렬왕 때 문신인 이순(李順)이 내기 바둑에서 절친 홍순(洪順)에게 모두 다 잃었지만 장난스런 말 한 마디로 잃었던 물품들을 죄다 되돌려 받은 사연이 전한다. 골동품과 서화를 모두 잃고 가보(家寶)인 현학금(玄鶴琴)마저 잃게 된 이순은 거문고를 주며 오래된 물건이라 귀신이 붙었을 거라며 장난을 친다. 어느 겨울밤 거문고 줄이 얼어 끊어지며 딩댕 소리가 났고 평소 겁이 많던 홍순은 귀신 소리인 줄 알고 놀라 날이 밝자마자 내기바둑에서 얻은 골동품과 서화까지 모두 거문고에 곁들여서 보내니, 이순이 못 이기는 척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장난에는 속이는 자-속는 자 간의 허물없는 유쾌함이 담겨 있다. 이 유쾌함의 근원에는 다름 아닌 웃음을 통한 나-너 간의 화합, 상대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자리해 있다. 그렇기에 속이는 자도 속는 자가 자신의 장난으로 인해 크게 고통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고, 속이는 자 역시 속는 자가 저를 해하려는 심각한 뜻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매우 ‘잘’ 안다. 그렇기에 그 장난은 유쾌하고 즐겁고, 재미가 있다.

한편, 자신의 유흥과 재미만을 위해 상대를 배려 않고 골탕 먹이려고만 하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장난’은 왠지 불편하다. 불편함이 수반된 ‘장난’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이러한 ‘장난’은, 나-너 간의 거리를 만들고, 틈새를 만들고, ‘불신’을 가져온다. 마이크로소프트 회사가 직원들에게, 만우절 장난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원치 않게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만우절 장난 금지령을 내린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웃음’은 유쾌한 웃음, 슬픈 웃음, 쓴 웃음, 따뜻한 웃음, 냉소적인 웃음, 비열한 웃음 등 그 종류가 무수하다. 이처럼 다양한 웃음을 연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평생 웃음 연구를 해온 루이 카자미안이 ‘왜 유모어는 定義(정의)할 수 없는가’라는 책을 썼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웃음’을 제대로 알 수는 없을 지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한바탕 웃을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 자체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왕 1년 365일 중 공공연히 ‘장난’이 허용되는 날이라면, 냉소적이고 쓴 웃음보다는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따뜻하고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장난을 한번 쳐 보면 어떨까? 각박한 세상, 조금이나마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