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어느 정권이든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는 투기를 차단하는 일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꼽는다.

열심히 일해 버는 게 아니라 불로소득에 가까운 투기소득을 방치했다가는 국민적 반발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부동산 투기에 나름대로 발 빠르게 대처해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 규제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공언해온 정부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투기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주무부처가 청와대 및 관계부처와 협의·조율 과정을 거쳐 투기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난 28일 공개된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을 들여다본 국민들은 현 정부가 과연 부동산 투기억제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의지가 있는 지 의심스러운 정황을 맞게됐다.

부동산 정책을 기획하거나 추진하는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다주택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우선 청와대 참모 중 집을 2채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가 13명이었다.

박종규 재정기획관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과 서초구 우면동 아파트를 부부 명의로 신고했다.

부동산 정책을 맡은 윤성원 국토교통비서관도 강남 논현동과 세종시에 아파트 1채씩 갖고 있다.

청와대 참모 중 가장 많은 148억원의 재산을 신고한 주현 중소벤처비서관은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세종시 새롬동 새뜸마을 아파트를 갖고 있다.

강성천 산업정책비서관은 본인 명의로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과 세종시 새롬동 더샵힐스테이트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박진규 통상비서관은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된 과천시 별양동 주공아파트와 본인 명의로 된 세종시 어진동 더샵센트럴시티 아파트를 신고했다. 참모들의 다주택은 부모 부양, 퇴직 후 실거주 목적 등의 이유였지만 군색한 변명이다.

주택입법을 맡는 국회의원들 중에도 다주택자가 많았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국회의원 286명(갑부의원 3명 제외) 가운데 113명(39.1%)이 다주택자였다.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은 강남 3구에만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4채를 갖고 있고,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의 서울 시내 소유 주택은 6채에 달했다.

이번 재산공개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바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었다.

김 대변인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 복합건물을 배우자 명의로 국민은행에서 10억2천만원을 빌려 25억7천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당 대변인인 민경욱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전셋값 대느라 헉헉 거리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는다’고 한탄하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드디어 16억 빚내서 재개발지역에 25억짜리 건물을 사며 꿈을 이뤘다”며 “격하게 축하한다”고 비꼬았다.

민 의원은 이어 “국민들한테는 집값 100% 폭락하니 절대 사지 말라더니…”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대변인은 “결혼 후 30년 가까이 집 없이 전세 생활을 했고, 지난해 2월 (대변인 임명 뒤에는) 청와대 관사에서 살고 있다”며 “이미 집이 있는데 또 사거나 시세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재개발 뒤 아파트와 상가를 각각 하나씩 받는데 아파트에선 노모를 모시고 살고 상가 임대료는 노후생활비이기 때문에 전형적 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뜻을 알리는 청와대 대변인이 노후대비 방법을 연금 등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재개발되는 부동산에서 찾으려 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다주택자를 모조리 투기꾼으로 몰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대책을 마련해야 할 각료, 청와대 비서진, 국회의원들이 떳떳한 이유 없이 집을 2채 이상 갖는 것은 국민들 눈에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주택정책에 관한 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란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