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주는 사람들(1)
포항생명의 전화를 찾아

포항생명의전화 사무국 직원 5명.(오른쪽 안쪽에서 시계방향으로 김남순 소장, 이미정 팀장, 편경희 선생, 이정미 팀장, 우정희 팀장.
포항생명의 전화 사무국 직원 5명.(오른쪽 안쪽에서 시계방향으로 김남순 소장, 이미정 팀장, 편경희 선생, 이정미 팀장, 우정희 팀장.

#1

몇 해 전 50대 후반으로부터 포항생명의 전화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금방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주변에 소주 2병과 끈이 있다고 했다.

왜 죽으려느냐고 물었다.
사업이 망해 아내와 이혼을 했고, 주변 분들에게 돈을 빌려 갚지 못해 사기꾼이 돼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노가다를 해가며 목숨을 부지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있을 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빚쟁이들이 몰려와 깽판을 칠까 그렇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해가 되느니 차라리 죽은 게 낫다고 했다.

살았을 때 좋은 점과 죽었을 때 좋은 점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자녀들에게 자살이란 유산을 물려 줄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견뎌낸 정서를 유산으로 물려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 정서를 유산으로 받은 자녀들은 고마워할 것이라고 했다.
한 목사님을 그 분에게 붙여 드렸다. 목사님은 허기진 그에게 죽을 대접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감당해 주셨다. 당신의 죄를 사해 주셨다”란 기도를 했다.

그동안 죄에 갇혀 있었던 그가 자유의 몸이 됐다. 기뻤다.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딸 결혼식에 참석 못했지만 아들 결혼식에는 참석했다는 메시지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감사하다는 말도 함께 적혀 있었다.

#2

언젠가 한 분이 포항 형산강 다리에서 뛰어 내려 죽으려는 한 여고생을 포항생명의 전화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아빠는 세상을 떠나시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자살기도 동기는 공개할 수 없고 가정적으로 복잡했다. 학교에 알려야 할 것 같았지만, 학교에 알리면 죽는다는 아이의 말에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2개월간 상담을 했다.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봤다.

그동안 한 번도 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선생님들이 맛있는 것도 주시고 나를 소중히 여겨 주셨다. 힘이 되는 말도 들려주셨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고 했다.

포항생명의전화 전화상담봉사자가 내담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포항생명의 전화 전화상담봉사자가 내담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27년째 18만여 건 상담

포항생명의 전화(이사장 안인수, 소장 김남순)가 27년째 18만여 건의 상담을 통해 내담자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며 울고 웃고 있다.

100여명의 전화상담자원봉사자들은 매일 24시간 번갈아가며 포항생명의 전화 사무실에 나와 내담자들의 고민과 갈등부터 혼자 이겨내기 힘든 위기와 자살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전화상담봉사자들은 50시간 이상 전화상담원교육을 수료한 자들이다. 이중의 권경애 전화상담봉사자(권사)와 김애련 전화상담봉사자(권사)는 생명의 전화 상담전화가 개통된 1993년 2월부터 27년째 꾸준히 생명존중문화 확산과 자살예방을 실천하고 있다.

권경애 씨는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담자의 이야기와 때로는 술 취한 내담자의 억지 등이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두 어떤 모양으로든 힘들고 방황하는 사람들이었던 걸 이해한다”며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소중한 사명으로 지금까지 상담봉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태승 전화상담봉사자(장로)는 “22년 전화상담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2005년 6월 3일 자정 무렵 ‘죽는다’는 40대 주부로의 전화를 받았다”며 “이 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려 6시간 동안 마라톤 전화상담을 했고, 이 분께 한 목사님을 보내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 그날 병원에 입원 중이시던 88세의 저의 어머니께서 소천하셨다”고 회고했다.

24시간 전화상담은 054-272-9191, 1588-9191(전국공통)로 하면 된다.

△ 가정폭력상담소, 피해자 권리·지원 안내

포항생명의 전화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와 부설 경북자살예방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가정폭력상담소는 가정폭력상담과 가족상담, 심리상담을 하고 있으며, 가정폭력의 재발 우려가 있고 긴급한 경우 경찰의 도움을 받아 주거지 등에서 가해자를 격리시킨다. 또 임시조치, 신변안전조치, 가정보호사건처리 등 가정폭력 피해자 권리 및 지원을 안내하고 있다.

상담시간은 월~금 오전 9시~오후 6시까지며, 054-242-0015로 상담을 요청하면 된다.

포항생명의 전화 김남순 소장은 “가정폭력이란 가족구성원 사이에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하며, 가족구성원 사이의 모든 폭력을 포괄하는 것”이라며 “가정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하며 무료법률구조 등 법적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북자살예방센터, 생명존중실천학교 지정 운영

경북자살예방센터는 심리상담, 집단상담, 교육을 진행하며, 연 1회 자살예방상담전문가 교육과 분기별 청소년생명존중교육, 청소년 생명존중 특강, 나·나·애(愛) 캠프를 운영한다. 또 전문가를 초청해 포럼과 특강도 하고, 전문가 양성, 자살자 유가족상담, 놀이상담, 119 등 기관연계도 진행한다.

남구정신보건복지센터와 공동으로 동해중학교와 영일중학교 등 중학교 2곳을 생명존중실천학교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생명존중실천학교는 해마다 2개 학교를 지정, 운영한다.

상담시간은 월~금 오전 9시~오후 6시까지며, 054-252-9177로 상담을 요청하면 된다.

이정미 포항생명의 전화 실장은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란 말씀에 의지해 천하보다 귀한 내담자들의 자살예방을 위해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고 기도하며 충실히 사명을 감당하고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 시민 대상 가족사랑·가정회복 거리캠페인 진행

포항생명의 전화는 이사회와 사무국으로 구성돼 있으며, 사무국 내 24시간 전화상담, 가정폭력상담소, 경북자살예방센터를 두고 있다. 포항생명의 전화는 5~10월 모든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포항시민들을 대상으로 가족사랑 및 가정회복 거리캠페인도 진행한다.

이사회는 안인수 이사장(삼일종합기획실 사장), 김영걸 목사(동부교회), 이수현 장로(소망교회), 박성근 목사(오천교회), 최득섭 목사(늘사랑교회), 손병렬 목사(중앙교회), 김원주 목사(소망교회), 배진기 목사(안디옥교회), 박영호 목사(제일교회), 김정섭 장로(기쁨의교회), 김언정 에스페로내과 사무장, 김문철 에스포항병원장, 고창대 고창대유외과 원장, 김영식 보형 대표이사, 김정규 계명대 교수, 박석진 목사(장성교회), 장성진 목사(큰숲교회), 김휘동 목사(송도교회), 박승대 장로(고문), 도충현 장로(고문)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이사장과 11개 교회, ㈜보형, 예장통합 포항노회 여전도회연합회, 50여명의 개인이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안인수 이사장(앞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과 김영걸 원장(일곱 번째)이 내빈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안인수 이사장(앞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과 김영걸 원장(일곱 번째)이 내빈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 “우리 사회, 고통 못 이겨 힘들어 하는 이웃 많아”

안인수 이사장은 “우리사회에는 겉이 건강해 보이지만 마음이 병을 앓으며, 삶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힘들어 하는 많은 이웃이 있다”며 “우리는 이들을 위해 이들의 내면에 귀 기울려 주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평안한 안식처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이사장은 이어 “우리는 앞으로도 온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에 정성스레 물을 주고 가꾸어서 모든 사람들이 생명이 주는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함께 행복해 하는 생명존중, 생명사랑 공동체 만들기에 앞장 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믿음으로 섬겨”

김영걸 원장은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위기상황에 내몰린 생명들을 돌보고, 섬겨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며 “그동안 생명의 전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생명들, 위로와 격려를 받은 영혼들, 생명의 존엄성을 새롭게 발견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한 상담자원봉사자들과 후원과 기도해 주신 분들의 덕분”이라고 했다.

△ “시작은 미미했으나 지금은 심히 창대해져”

김종렬 초대원장은 “포항생명의 전화의 시작은 미미했으나 지금은 심히 창대하게 됐다”며 “지난 사반세기 동안 포항생명의 전화가 놀라운 발전을 가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이사장들과 원장들, 소장들, 직원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 누구보다도 24시간 밤잠을 자지 않고 전화상담을 해 준 자원봉사자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감사했다.

사무국은 김남순 소장, 이정미 실장, 이미정 팀장, 우정희 팀장, 편경희 선생 등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전화상담원교육을 진행하고 전화상담봉사자 관리와 가정폭력상담소, 경북자살예방센터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우리 주변에는 외로움과 억울함, 후회와 죄책감으로 무거운 가슴을 안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친구나 가족들 간의 갈등과 상처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우리 생명의전화는 바로 이들이 절망에서 희망의 줄을 잡고, 어두움에서 빛의 줄을 붙들고, 죽음에서 생명의 끊을 잡고 삶의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남순 소장은 “누구나 어려운 이웃을 발견하면 생명의 전화로 안내 해 줄 것을 시민들에게 부탁드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쉬고 있는 전화상담봉사자들은 재교육을 받고 다시 봉사자로 나서 준다면 위기의 가정과 자살기도자들을 막아 한층 살기 좋은 포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이사장과 원장은 다음과 같다.

1대 이종학 이사장, 김종렬 원장, 2대 박노정 이사장, 한태철 원장, 3대 김현호 이사장, 서임중 원장, 4대 이대공 이사장, 이호현 원장, 5대 김정치 이사장, 김광웅 원장, 6대 도충현 이사장, 주종근 원장, 7대 박승대 이사장, 최득섭 원장, 8대 안인수 이사장, 김영걸 원장. 초대 소장은 장기순 씨가 지냈다.

포항생명의전화 사무국 직원들의 근무 모습.
포항생명의전화 사무국 직원들의 근무 모습.

△포항생명의전화, 제일교회 주도로 탄생

생명의 전화 운동은 1962년 6월 어느 날 한 밤중에 절망가운데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한 젊은이의 전화를 받은 호주 시드니시 중앙감리교회의 알렌 워커 목사에 의해 태동됐다. 이 운동은 시드니시 뿐만 아니라 호주의 여러 다른 도시로 확산돼 갔고, 마침내 세계 여러 나라로 번져갔다.

한국의 생명전화 운동은 교회의 사회봉사(디아코니아)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열정을 가진 이영민 목사에 의해 1976년 9월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역사적인 개통식을 가짐으로써 시작됐다.

포항생명의 전화는 1989년 3월 포항제일교회 주관으로 생명의전화 설립 추진위원회가 결성된데 이어 1992년 8월 포항생명의 전화 이사회가 설립됐다. 그해 제1차 상담원교육을 통해 168명이 수료했다. 이듬해 1993년 2월 ‘포항시민들의 신음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자’란 슬로건을 내걸고 역사적인 포항생명의 전화가 개통됐다.

/김규동기자 k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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