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730쪽 분량의 두툼한 ‘환동해문명사’가 발간된 게 지난 2015년 8월 말이다. 주강현 현 국립해양박물관 관장의 역저로, 환동해의 모든 것을 담은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한 달 후 당시 제주대 석좌교수였던 주강현 관장이 포항을 방문해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10월 20일 박물관 건립을 위한 심포지엄이, 12월 16일에는 박물관 건립 추진을 위한 간담회가 잇달아 열렸다.

그해 공교롭게도 포항에는 ‘환동해’를 무대로 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3월 말 포항에서 열린 제3회 환동해 국제심포지엄에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환동해지역연구센터가 결합하면서 한결 풍성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8월 말에는 지역 숙원사업이던 영일만항 국제여객부두 건설이 확정되면서 영일만항 활성화를 위한 다각도의 논의가 진행됐다. 여기에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 논의가 포개지면서 포항의 미래를 포항의 근본인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는 ‘해양 담론’이 후끈 달아올랐다. 포항은 산업도시에서 해양문화도시로 전환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환동해의 랜드마크 조성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2017년 4월 28일 박물관 건립 기본구상 연구용역에 착수했고, 일 년 후 최종보고회가 열렸다. 올해 드디어 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용역이 진행될 예정이다.

환동해의 품은 넓고도 깊다. 주강현 관장에 따르면 환동해는 “중국 쪽에서 바라본 동쪽 바다, 러시아 연해주의 바다, 오호츠크와 인접한 사할린과 홋카이도의 바다, 일본 북서부 바다, 그리고 다양한 북방 소수민족들이 바라본 바다 등을 포괄한다.” 따라서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이 담아내야 하는 콘텐츠는 다종다양하다. 국민국가 차원을 넘어선다. 환동해 연안의 여러 국가와 다양한 소수민족의 문명, 그 문명 간의 역동적인 교류사, 그리고 이들 국가와 민족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미래 비전을 담아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환동해권 국가와 민족이 소모적인 갈등, 긴장과 결별하고 공동체적 연대감을 가짐으로써 환동해권의 평화와 공동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이 기존의 해양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을 탈피하고, 인류학, 민속학, 역사학 등을 포괄하는 차원 높은 융복합 박물관이 돼야 하는 이유이다.

바다를 기반으로 한 문명사박물관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2013년 6월 4일 개관한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이 좋은 참고 사례이다. 유럽과 지중해 문명사를 핵심 테마로 한 이 박물관은 지방의 문화와 경제를 살리려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이 건립되던 해 마르세유는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면서 재도약의 날개를 펴게 됐다.

2016년 8월 말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의 기억’ 서문이 떠올랐다.

“지중해의 유구한 역사를 곁에서 지켜본 최고의 목격자는 바로 지중해일 것이다. 누구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중해를 보고 또 보아야만 한다. (……) 지중해는 우리를 위해 과거의 경험들을 재현해내고, 그 경험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우리가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이 고색창연한 문장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은 지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국립으로 가야 하기에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치밀한 전략과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뜨거운 성원이 있어야 한다. 인천은 2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립해양박물관유치범시민추진위원회가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전 시민적 에너지를 결집한 결과 박물관 건립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큰 꿈을 품은 도시가 큰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포항의 미래는 저 아득한 수평선 너머에 있다. 깊고 넓은 환동해의 문명을 품은 도시, 포항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