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누가 뭐래도 대구·경북(TK)의 미래정치를 걸머진 동량지재(棟梁之材)들이다. 두 사람의 역정은 사뭇 다르다. 유승민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출신의 흔치 않은 베테랑 경제통 정치인이다. 보수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박근혜 정권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혁적 보수’의 아이콘이 돼 있다. 김부겸은 학생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정치를 시작, 3당 합당으로 보수정당 소속이 됐다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다시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취임해 일해왔고, 후임 개각 결정으로 국회 복귀를 예정하고 있다.

진영논리에 함몰된 척박한 한국 정치의 지형 속에서 두 정치인은 대구 출신이라는 동향(同鄕) 말고는 외견상 도무지 닮은꼴이 아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에게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엄정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기질을 드러내는 공통점이 있다. 투철하되 조직의 모순과 싸구려로 타협하지 않는 그 기질들은 어쩌면 소중히 지켜야 할 TK의 전통적인 뚝심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했던 유승민은 국민의당과 합당 이후 지휘봉을 넘겨준 뒤 긴 겨울잠을 잤다. 그러던 그가 선거구 협상 과정에서 여야 4당의 한 축으로서 취하고 있는 ‘패스트트랙’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선거법과 국회법은 지금보다 다수당의 횡포가 훨씬 심할 때도 숫자의 횡포(다수결)로 결정한 적이 없다”고 곧은 소리를 던졌다.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불참한 문재인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서는 “국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서해 무력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표현한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도 “오늘 무슨 낯으로 영웅들의 영정을 바라봤을지”라고 내리쳤다.

유승민이 ‘개혁적 보수’ 기치를 내걸고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낸 바른정당의 ‘중도정치’ 실험은 안타깝게도 성공의 땅에 이르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합쳐낸 바른미래당은 오늘날 ‘보수’라는 말을 던져버린 지 오래고, ‘중도’마저 투철하게 지켜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김부겸은 늘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 정서로 정치를 해왔지만 조금은 달랐다. 어설픈 이념에 발 묶이지 않는 합리적 사고체계를 건강하게 갖춘 정치인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오히려 빛이 바랬다. 장관으로서 김부겸은 전국 산지사방에서 시나브로 터지는 사건 사고 현장에 노란 점퍼 입고 부지런히 나다니는 모습 말고 지역민들에게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지역민들은 하필이면 혹독한 ‘TK 홀대’와 노골적인 ‘TK 패싱’이 자심한 문재인 정부의 행태 때문에 서운한 감정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그가 재임 막판 개각 과정에서 드러난 ‘출신지 세탁’ 논란 국면에서 청와대의 처사를 ‘치졸하다’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 도중 정부의 개각 인사 발표 방식에 대해 “늘 하던 방식이 아닌 그런 발상을 정부 내에서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치졸하다고 생각한다”고 작심 발언했다. 개각 때 7명의 장관 후보 출신지를 기존의 출생이 아닌 고교 기준으로 분류한 편법을 겨냥한 것이다.

유승민이 긴 동면에서 깨어나고, 김부겸이 국회로 돌아온다. ‘꼴통보수’의 무지막지한 싹쓸이 정치가 빚어낸 TK 정치의 폐해를 씻어내고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를 진화시킬 의무가 그들에게 지워져 있다. 두 사람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교집합 영역을 한껏 넓혀, 건실한 ‘중도’의 땅을 왕성하게 개척해주기를 기대한다. 빈사 상태에 빠진 TK 정치를 다시 일궈낼 막중한 책임이 두 사람의 어깨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