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백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

기억력에 대해서는 나름 자부하던 나도 어느 시기부터 망각하는 것이 늘고 기억해 내는 데 힘이 든다. 그만큼 뇌가 노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어느 자연인은 인생의 참담함을 경험한 후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지난날의 모든 것을 잊고 사니 병도 없어지고 삶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망각의 이중성이다.20년 전쯤이었다.

나는 ‘설에서 보자’라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설? 설날을 앞둔 시기였으니 ‘설날에 보자’라는 말인가?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설’은 ‘서울’이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재미있다는 생각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처럼 이제 ‘설’ 정도는 옛말이 되었고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수없이 만들어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 정체 모를 신조어들을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고지식한 사람이 돼 버린다. 물론 그 언어들 속에는 시대의 아픔이 담긴 웃을 수 없는 단어들도 있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언어로 이해되는 것이 대다수이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우리말글은 망각한 것인가? 언어에 대한 망각이 현실의 비정상적 행동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게 하는 것인가? 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 한국어 종결어미는 ‘~삼’, ‘~당’이 판을 치고 대답하는 말도 ‘넹’을 쓴다. 유성음이 종성으로 들어가니 어감이 친근하고 귀여운 느낌은 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쓰는 양상을 보면 거부감이 든다. 아이들과 혹은 젊은 세대들과 눈높이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듣기 거북한 비속어들을 스스럼없이 쓰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느 공포 영화 못지않다.

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수평적 호칭제’라는 미명 아래 학교 구성원 간의 호칭을 ‘쌤’이나 ‘님’으로 통일하자는 방안을 내 놓았다. 학생도 교사도 모두 ‘~쌤’이라고 부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발표되자마자 곳곳에서 반발이 일어났고 교육감은 “최근 교권 추락이 크게 우려되는 현실 속에서 수평적 조직문화 개선 정신이 충분히 부각되지 않고 호칭 문제만 제기되어 안타깝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이 방안은 교직원 간의 호칭으로만 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또한 찜찜한 결론이다.

현재 복수표준어인 ‘멍게’와 ‘우렁쉥이’가 처음에는 ‘우렁쉥이’만 표준어였고 ‘멍게’는 비표준어였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표준어 ‘우렁쉥이’에 비해 비표준어 ‘멍게’가 음절수나 모음 발음에 있어 경제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하였고 이에 따라 ‘멍게’는 공식적으로 ‘비(非)’를 떼고 ‘표준어’가 된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멍게’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은 단어들을 살피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리하여 2011년에는 그렇게 논란이 많았던 ‘짜장면’을 비롯해 지금까지 69개의 비표준어가 표준어 목록에 올랐다. 우리는 이러한 공식적 언어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리라 본다. 단순히 많이 사용하고 의사소통에 편리하다고 하더라도 언어 사용으로 인한 국민 정서에 대한 고려가 먼저 세밀히 있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우리의 문자를 만듦으로 민족의 자존감을 세웠고,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은 우리말글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여겼다.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우리말글을 물려주었다. 자연환경 때문이든 생활환경 때문이든 우리는 많이 잊어 가고 있다. 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의 병도 겪는다. 그러나 잊는다는 것에 너무 무뎌 있지는 않는가? 사라질 뻔했던 대구 방천시장은 ‘김광석길’을 만들며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