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원숭이’

로버트 더들리 지음·궁리 펴냄
인문·1만5천원

로버트 더들리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교수가 쓴 ‘술 취한 원숭이’(궁리 펴냄)는 왜 우리가 알코올을 좋아하고 마시는지 과학적으로 탐구한다.

저자는 지난 2000년 영장류가 과일을 먹는 행위와 알코올 섭취의 진화학적 기원을 다룬 ‘술 취한 원숭이 가설’(drunken monkey hypothesis)을 학계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연구실과 열대 우림 지대를 오가며 알코올 소비와 중독의 진화학적 기원을 탐구한 결과를 담았다. 왜 술을 마시고 언제부터 알코올에 끌렸는지, 왜 음식을 먹을 때 술을 찾는지, 유전적으로 술을 더 좋아하고 알코올에 강한 사람이 정말 있는지 등에 대한 물음에 답한다.

책에 따르면 초기 인류가 당과 소량의 알코올이 함유된 잘 익은 과일을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면, 이 발효의 과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금의 인류는 맥주, 포도주, 증류주 등의 술을 다양하게 때로는 과하게 즐기고 있다. 알코올을 과도하게 소비하는 양식이 광범위하게 확대된 것이다. 과일에 포함된 소량의 알코올은 정글에서는 안전하게 작동되었지만 슈퍼마켓에서 맥주, 포도주 혹은 증류주를 마구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알코올은 위험한 것으로 변했다. 반면 자연 환경에서는 동물들이 과도한 양의 알코올에 노출되는 일은 결코 없다. 원숭이가 술에 취해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은 자연계에서 관찰하기란 힘들다.

저자는 독성학 분야의 중요한 개념인 호르메시스 이론을 비중 있게 설명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을 소량씩 투여하면 건강에 이롭다는 얘기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알코올에 전혀 노출되지 않아도, 과도하게 노출돼도 문제다. 적은 양의 술이 인간과 동물에게 이로운 효과를 준다는 데이터는 많다. 알코올이 심장 질환을 유도할 수 있는 동맥경화반 형성을 줄이며, 항균 작용이 있는 알코올 덕분에 감염성 세균을 제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알코올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모두 가지고 있다. 물론 성별, 지역, 개인에 따라 알코올 반응은 제각각이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 사람들 중에는 적은 양의 술을 마셔도 얼굴이 금세 붉게 변하는 이들이 많다. 알코올대사에 관여하는 효소는 그 종류도 다양하고 변종이 많은데, 동아시아인은 대체로 알코올 대사 중간 산물인 독성물질, 아세트알데히드를 천천히 분해한다. 반면 서유럽 사람들은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가 빠르게 대사된다.

알코올 중독의 기원과 관련해 재미있는 단서는 알코올 섭취와 단맛 선호도가 서로 관련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알코올과 당은 과육에 들어 있는 성분이며, 자연계의 동물에게 알코올은 당과 함께 노출되는 물질이다.

한편, 인간이 술을 마시면서 당(와인, 맥주, 혼합주는 상당한 양의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다)을 함께 섭취하면 간 대사 효소 활성이 증가해 알코올 대사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고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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