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야당 의원이 정부나 여당의원을 향해 비판발언을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용인되는 폭이 상당히 넓다. 여야가 서로 견제·비판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라는 우리 정치 풍토상 야당 의원이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경우에는 적지않은 풍파가 일곤 했다.

첫 정권교체가 이뤄진 김대중(DJ) 정부 때엔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모욕과 고소·고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빈민ㆍ노동 운동가 출신의 제정구 전 한나라당 의원이 1999년 폐암으로 사망하자, 당시 이부영 의원이 “제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 때문에 억장이 터져‘DJ 암’에 걸려 사망했다”고 했고, 김홍신 의원은 “김 대통령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모욕죄로 기소돼 대법원 유죄 판결(벌금 100만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때는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상배 정책위의장이 일본 순방을 마치고 온 노 대통령을 향해 “이번 방일 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으로, ‘등신 외교’의 표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하자 청와대는 즉각 “정상외교 중인 대통령에 대한 한나라당의 망언은 국가원수와 국민에 대한 있을 수 없는 모독”이라고 반발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도 출범 직후 광우병 파동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 대통령의 생김새를 비하한 ‘쥐박이’ 등의 신조어가 대표적이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명박 정부는 국민주권을 짓밟은 쿠데타 정권”이라며 “쥐박이·땅박이·2MB”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해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야당의원이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란 뜻의 ‘귀태’ 라는 표현을 썼다가 논란을 빚었다. 2013년 7월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만주국의 귀태(鬼胎)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후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비판해 ‘귀태’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을 쓰자 민주당 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아예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 형법에는 ‘국가원수모독죄’라는 죄명이 없다. 다만 과거에 국가모독죄란 죄명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아래에서 만들어진 죄목이다. 1975년 3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가 형법을 개정해 신설했던 것으로, 그 내용은 내국인이 대한민국이나 헌법에 따라 설치된 국가기관을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형법 제104조 2항에 규정한 것이다. 한 마디로 유신체제나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형사처벌하자는 독소조항이었던 이 조항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폐지 논의가 일었고,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되자 여야 4당은 ‘국가모독죄 삭제와 정치풍토쇄신법 폐지’의 여야단일안을 상정했고, 같은 해 12월 국가모독죄 조항은 삭제됐다. 특히 헌재도 폐지 27년 만인 2015년에 국가의 위신 등의 불명확한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형법개정 당시 초선의원으로서 국가모독죄 폐지에 동참했던 이해찬 대표가 국가원수 모독죄를 거론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어쨌든 야당의원이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고 해서 형법에도 없는 ‘국가원수모독죄’를 거론하는 것은 지나친 리액션이다. 오히려 4월 보궐선거와 일년 앞둔 총선을 의식한 여야가 힘겨루기에만 골몰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입맛이 씁쓸하다.

서민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한판 씨름은 ‘우습지 않은 억지 춘향 코미디’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