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정국에 핵폭탄이 됐다. 나 원내대표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 등 수위 높은 표현에 청와대까지 직접 나서서 나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있지도 않은 ‘국가원수 모독죄’를 들먹이며 분노를 표출했다. 한국당은 지난날 민주당의 막말 쓰레기통을 엎어놓고 반박에 나섰다. 해묵은 퇴행 정치가 안 그래도 삶이 버거운 국민을 더욱 절망시키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제2차 북미회담 협상 결렬을 언급하며 “외교·안보 라인 전면교체가 시급하다.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이 이제는 부끄럽다”면서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망언”이라며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한국당 의원들이 맞받아치면서 한동안 연설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의총에서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도 이례적으로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응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했고 설훈 최고위원은 “태극기 부대 수준의 망언”이라며 나 원내대표의 사과와 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이날 한 방송에서 “과거 저주의 단어들을 쓴 것은 민주당”이라면서 “민주당은 야당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귀태’라 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명박박명’이라고 했다”고 상기했다. 또 “국가원수 모독죄는 유신독재 시절 만들어져 민주화 이후 88년도에 폐지된 법”이라며 “역사 인식이 군사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거냐”라고 꼬집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쓴 지난 2014년 10월15일자 신문칼럼도 입줄에 올랐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의 ‘대통령 연애’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조 수석은 기고문에서 “국가원수 모독죄와 유언비어 유포죄라는 황당한 죄목으로 시민의 입을 막던 유신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시절”이라고 썼다. 블룸버그 통신의 기사를 원용한 나 원내대표의 비판연설에 벌떼처럼 나선 민주당의 반발은 아무리 봐도 과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충성경쟁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허툰 말이 아닌 듯하다. 김정재 한국당 원내대변인의 지적처럼, 부디 이 정권이 정말로 ‘권력에 취해 독재라는 환각에 빠져있지’ 않기를 소망한다. 세월이 흘러도, 공수(攻守)가 바뀌어도 기억상실증에 빠진 듯한 정치권의 판박이 드잡이 행태가 허탈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