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을 회복하는 동안 소년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책을 꺼내 읽습니다. 닳아 빠진 두 권의 책은 외울 정도입니다. 불멸의 고전 두 권이 목표와 꿈을 되살려줍니다.

여행 15개월째. 고향에서 1천500㎞ 떨어진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도착합니다. 6개월을 머물며 여비를 벌며 틈이 나면 도서관을 찾습니다. 어느 날 사진이 가득 실린 미국 대학 편람을 발견합니다. 수많은 캠퍼스 사진들을 마주하며 가슴이 뜨거워진 소년은 워싱턴 주 마운틴 버넌에 있는 스캐짓밸리 대학에 유독 마음이 끌립니다. 레그손은 학장에게 처지를 설명하고 장학금을 신청하는 편지를 쓰지요. 학장은 아프리카 소년의 편지에 감동해 입학을 허락할 뿐 아니라 장학금과 숙소, 일자리까지 제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물이 첩첩산중입니다. 여권을 받으려면 정부에 출생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왕복 항공권을 살 수 있는 여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소년은 멈추지 않고 다시 펜을 집어듭니다. 멘토인 선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그들은 즉각 정부 관계자들과 협의, 레그손의 여권을 발급해 줍니다. 하지만 항공료를 마련하는 일은 진척이 없습니다. 레그손은 절망 대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 북쪽으로 걷는 편을 택합니다. 카이로에 도착하면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오히려 수중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 구두 한 켤레를 삽니다. 스캐짓밸리 대학 교문을 맨발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결단입니다. 한 아프리카 소년의 꿈을 좇는 도보 여행에 대한 소문이 유럽과 대서양을 건너 미국 워싱턴주 마운트버넌까지 퍼집니다. 항공 운임 650달러는 스캐짓밸리 대학 학생들과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순식간에 해결하지요.

결국 집을 떠난지 2년 2개월만인 1960년 12월. 레그손 카이라는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보물처럼 간직한 책 두 권을 가슴에 품고 스캐짓밸리 대학 교문을 통과합니다. 소년은 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정치학 교수이자 작가로 발돋움하지요. 레그손 카이라는 말합니다. “나는 환경의 희생자가 아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다.”

닳아 빠진 두 권의 책,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 무엇보다 그 영혼 안에 담긴 위대함을 향한 배움의 열정과 꿈이 그의 삶을 당당하게 빛나게 했습니다. 그 빛은 등대가 되어 이 새벽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힙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