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에르빈 헤리히(Erwin Heerich)의 붉은 벽돌 건물. 건축은 전시 공간이자 그 자체로 미니멀한 조각적 조형미를 가진다.

지키는 사람도, 바리케이트도, 명제표나 전시 설명도 없는 미술관이 있다면? 친절한 듯 전혀 친절하지 않은 그런 미술관이 정말로 독일 노이스(Neuss)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있다. ‘보안이 허술한 것으로 보니 그리 값나가는 작품들이 전시된 것은 아니겠지’하고 어림짐작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폴 세잔(Paul Cezanne)이나 에두아르도 칠리다(Eduardo Chillida), 심지어 천문학적인 작품가를 자랑하는 알베르토 쟈코메티(Alberto Giacometti),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요제프 보이스(Joeseph Beuys) 등 현대미술사를 움직였던 최고 거장들의 작품들이 아무런 감시나 보호 없이 전시되어 있다.

 

7만평의 넓은 자연에 조성된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
7만평의 넓은 자연에 조성된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

작품 보호를 위해 감상자를 작품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수많은 물리적 장치들이 즐비한 보통의 미술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도는 미술관이다. ‘무제움 인젤 홈브로이히’(Museum Insel Hombroich), 네덜란드와 인접해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 근교 노이스에 위치한 미술관이 바로 그곳이다.

그렇다면 충분히 보호되지 못한 고가의 미술작품들은 과연 안전할까?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1987년 개관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껏 작품 훼손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전혀 없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는지 추측해 본다. 작품보호를 위해 감상자를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 작품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방법은 아주 손쉽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감상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제한시켜 버린다. 감상자에게 감시의 눈이 유쾌할 리 없다. 작품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언제나 감상자와 멀리 떨어져 있다. 작품을 대하는 감상자는 수동적 관찰자나 방관자로 머무른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경고문이나 바리케이드가 없는 작품은 만져도 되는 것으로 인식해 숱한 해프닝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최소한의 장치만 남겨두고 대부분의 규제들을 풀어버렸더니, 오히려 감상자들에게 작품을 함께 보호해야한다는 능동성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

 

자연이 미술이되고, 미술이 자연이 되는 홈브로이히 미술관.
자연이 미술이되고, 미술이 자연이 되는 홈브로이히 미술관.

물론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질서와 규범, 규칙을 지키려는 사회적 합의와 실천적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어떤 이유로 작가, 제목, 연도 등과 같은 기본 정보를 담은 명제표를 벽에서 제거해 버렸을까? 명제표는 보았던 작품을 기억할 때 유용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허나 그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관람객들이 작품 자체보다는 명제표를 읽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명제표를 붙이지 않았으니 작품이 시선을 끌지 못하면 감상자는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치기 쉽다. 그렇더라도 명제표를 표기하고 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득이 있다. 작가의 유명세로부터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작가의 유명세라는 프리미엄이 우리의 눈을 얼마나 흐려놓았는지를. 아름다운지 아닌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보거나 따질 겨를도 없이 작가의 이름에 현혹되어 위선에 가까운 존경을 표한 적이 얼마나 잦았던가? 이름표도, 설명도 없기 때문에 감상자는 홀로 맨 눈과 정신으로 작품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 미술관과 전혀 다른 콘셉트로 작품들을 관람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전통적 미술관과 전혀 다른 콘셉트로 작품들을 관람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화이트 큐브’(White Cube)로 대변되는 20세기 미술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술-자연-사람’이 본질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로운 미술관에 대한 용감한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정제된 백색공간에 박제된 듯 전시된 미술작품들은 수많은 부대 장치들로 떠들썩하게 소개된다. 인공적인 공간에 인위적으로 설치된 작품들. 물리적 경계와 보이지 않는 감시 시스템들이 감상자와 작품 사이에 내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방해한다. 반면 홈브로이히 미술관에서 감상자는 오롯이 작품과 단독으로 대면할 수 있다.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설립자 칼-하인리히 뮐러(Karl-Heinrich M<00FC>ller)는 뒤셀도르프 출신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방대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1982년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한 미술관을 짓기로 결심했다. 기존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미술관을 짓 자는 조언을 한 사람은 미술가 고트하르트 그라우브너(Gotthard Graubner)였다. 일반적으로 미술관들이 시대별, 양식별, 장르별로 작품을 전시하는 반면 홈브로이히 미술관에서는 모든 전통적, 형식적 기준들이 파괴되었다. 아시아의 전통 공예가 유럽 현대미술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중국 골동품으로 보이는 가구들과 현대 추상미술이 지역과 시대를 넘나들며 감상자들과 소통을 한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관람객들에게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간단한 식사를 제공해 준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관람객들에게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간단한 식사를 제공해 준다.

라인강의 지류인 에르프트(Erft)가 만들어 놓은 늪지에 자연을 닮은 미술작품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숲길을 걷다보면 뜻밖의 장소에 전시 공간이 숨은 듯 펼쳐져 있다. 매표소 안내 데스크에서 챙겨온 지도 한 장을 들고 각 전시장에 매겨진 번호를 찾아가며 자연 속을 걸어야 한다. 붉은 벽돌로 군더더기 없이 자연과 어우러진 10개의 갤러리 건물들은 건축가 에르빈 헤리히(Erwin Heerich)의 작품이다. 어떤 공간은 아무런 작품도 없이 비어 있다. 오로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소리’이다.

건축물의 내부 구조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파장을 청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마주하는 벽면에 따라 소리는 서로 다른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공간을 계획하면서 에르빈 헤리히가 의도했던 것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수동적 전시공간이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조각적 건축’(begehbare skulpturale Architektur)이었다.

무제움 인젤 홈브로이히. 그 이름에 나타나는 ‘인젤’(Insel)은 독일어로 ‘섬’을 뜻한다. 실제로 홈브로이히 미술관이 물위에 떠 있는 섬은 아니다. 일종의 은유이다. 철학자 발터 비멜(Walter Biemel)의 말을 빌자면 섬은 이런 곳이다.

“섬의 존재는 경이로울 뿐이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그것에 대해 묘사를 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미술을 통해 쉼을 얻을 수 있는 홈브로이히 미술관. 사진/ P. Krubeck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미술을 통해 쉼을 얻을 수 있는 홈브로이히 미술관. 사진/ P. Krubeck

섬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육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어 놓는다. 미술의 속성도 그렇다. 일상의 시선이 관심 없이 지나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무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기막힌 예술적 실험들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열어주는 것이 미술이다. 그렇다면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분명히 미술의 섬이 맞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존재하는 모든 미술관은 섬이 되어야 한다.

미술가의 명성도, 미술 앞에 드리워진 고상한 사회적 벽도, 감상자를 혼란으로 빠트리는 작품에 대한 정보도, 작품과 감상자를 가로막는 어떠한 장애물도, 복잡하게 꼬여 있는 미술의 역사나 이론에 대한 지식도, 심지어 작품을 그럴듯하게 비춰주는 인공조명도 이곳 홈브로이히 미술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자연이 미술이 되고, 미술이 자연이 되는 홈브로이히 미술관. 자연과 미술의 경계가 사라진 이곳에서 감상자들 역시 방관자가 아니라 자연이 되고 미술작품이 된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미술이 무엇인지? 왜 우리에게 미술이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 시대는 어떠한 미술관을 요구하는지 시사해주는 바가 아주 크다.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미술관을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은가?”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