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연오랑의 ‘잃어버린 신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미술적으로 해석한 작품이 작년 9월 서울 삼청동 ‘바라캇 서울’에서 전시돼 주목을 받았다. 영국 출신 작가 셰자드 다우드가 연오랑의 신발을 ‘잃어버린 난민의 소지품’으로 여기고,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제사 지내는 장면을 아소르스(Azores) 제도의 비현실적인 일몰의 순간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현시대의 긴급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셰자드 다우드는 서울 큐레이터가 제안한 연오설화에서 영감을 얻어 천 위의 페인팅으로 재해석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된 관심사이자 지구촌의 과제를 외국의 고대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화한 것이다.

설화는 다양하게 해석되거나 변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실제로 연오설화는 수많은 연구결과가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역사적 사실로 보는 견해, 둘째 모종의 사실이 은유와 상징으로 포장돼 있다고 보는 견해, 셋째 은유와 상징에 방점을 두는 견해다.

첫째 견해의 대표적인 연구자는 이영희다. 이영희는 연오랑 세오녀를 우리나라 금속 제조 기술을 상징하는 실존 인물로 본다. 일월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제철 공정의 불이 꺼진 것이고, 일월이 예전같이 돌아왔다는 것은 제철 공정이 재개됐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둘째 견해, 곧 ‘비판적 신빙론’은 이문기를 꼽을 수 있다. 이문기는 “연오설화는 한반도를 떠나 일본열도의 어느 곳에 정착한 이주민 세력이 지배자로 군림했던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성립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특히 영일지역의 선주 토착세력이 새로 이동해 온 이주세력에게 밀려 일본열도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하여 지배자로 성장한 사실이 투영된 설화일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셋째 견해는 고운기가 대표적이다. 연오설화를 정치적 의미로만 풀어서는 곤란하고, 일월이 빛을 잃었다는 얘기도 일식, 월식 같은 자연 현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고운기의 주장이다. 그는 일관이 이른 ‘일월지정(日月之精)에서 ‘정’을 ‘정령(精靈)’으로 번역한다. 즉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정령이며, 연오 세오는 해와 달의 정령이자 의인화라는 해석이다.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고, 사회도 그러하다는 것을 일연이 강조했다고 보는 것이다.

짧은 이야기 한 편을 놓고 해석에 이렇게 큰 편차가 있다. 신라 건국 초기의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13세기 후반에 일연이 편찬하고, 21세기에 우리가 풀이하고 있으니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연오설화는 지역의 정체성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동시에 초기 신라인의 심성과 세계관을 읽을 수 있고,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자료이다. 그동안 연오설화를 놓고 학문적 연구는 물론, 문학, 음악, 무용, 연극, 창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작업이 있었고, 앞으로 더 다채로운 시도가 이뤄질 것이다. 이 작업이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지려면 보편적인 울림이 있어야 한다.

연오설화는 단순히 한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관계를 넘어 현시대의 세계적 이슈와도 연결될 수 있는 메타포를 안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연오설화의 지역적 가치를 충분히 감안하되, 넓고 깊은 보편적 지평 속에서 해석해야 더 창의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무대에서 연오설화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나저나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 근사한 이야기의 작가는 누구인지, 연오랑과 세오녀는 누구인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