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재발견 소설가 김별아의 경주 월성을 걷는 시간
⑨ 권세규 월성 발굴 작업반장 인터뷰

권세규 작업반장(왼쪽)과 작업반원이 월성 발굴 C 지구에서 신라시대와 현재를 이어주는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아는 게 없어 할 말이 없고, 누군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 했던 적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천년의 잠에 빠졌던 월성의 속살을 가장 깊숙이에서 온종일 어루더듬는 사람들의 말이 어눌할지언정 어찌 헐후할까? 월성의 주인은 알에서 태어난 조상을 가진 왕족들이었지만, 월성을 만든 사람은 흙투성이 손을 두려워하지 않는 평범한 백성들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1970년대 황룡사지 발굴 때부터 40여 년간 일해 온 경주 문화재 발굴조사의 ‘산증인’ 최태환 씨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태환 씨의 인터뷰가 여의치 않아, 경주문화재연구소 최향선 학예사의 도움으로 권세규 작업반장을 소개받았다.

권세규 씨는 사설 기관을 통해 이루어진 작업을 포함해 10여 년을 경주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일해 왔고,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작업반원이자 작업반장으로 일한 베테랑이다. 겨울철 작업 중단으로 휴가 중인 권세규(74) 씨를 성건동 자택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물론 하루 종일 성과 없이 흙만 팔 수도 있습니다.

앉은 방석을 깔고 조금씩 움직이면서 땅을 팝니다.

가끔은 지루해서 옆 사람과 잡담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작업을 진행합니다.

- 현재 월성 발굴 조사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반 인원은 얼마나 됩니까?

△한 조에 약 20명 정도입니다. 월성 전체로 보면 7개 조, 약 140명 정도 됩니다. 날씨에 따라 너무 춥거나 더운 두세 달을 제외하고는 1년 동안 이 인원들이 출근합니다. 건강 문제라든가 집안 형편이라든가 개인적인 사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근하는 편입니다.

- 작업반의 성별과 연령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연령별로는 작업반원 중 최고령자가 80세이고 최연소자가 50대 중후반입니다. 고령자들은 경력이 10년에서 2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고, 보통은 60대에서 70대가 가장 많습니다. 다들 연령대가 높은 편인데, 정년이 따로 없다가 올해부터 만75세 정년 규정이 생겼습니다. 성별로는 총 작업반원 140명 7개 조 가운데 여성이 1개 조 약 20명인데, 주로 물체질(water-sieving, water-floatation)을 맡고 있습니다. 물체질 조는 발굴 후 남은 흙을 체질해서 씨앗이나 토우 등을 낱낱이 건져내는 일을 합니다. 나머지 6개 조는 주로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부도 서너 쌍 있습니다.

- 월성 작업반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조사하는 지구별로 구성됩니다. 성벽, 해자, 왕궁 건물지 등 3개 현장에서 각각 조별로 작업합니다. 지금까지 성벽에 2개조, 해자에 3개조, 왕궁 건물지에 2개조가 작업해 왔는데, 현재는 해자 쪽에 일이 많아져서 왕궁 건물지 담당 1개조를 그리로 보냈습니다. 각 조는 작업반장 1명과 조원 19명가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업 현장을 총괄하는 학예사가 1조에 1인 또는 2조에 1인이 결합되어 있고, 연구원은 학예사 1인당 3~4인이 함께합니다. 연구원들은 작업반원들과 함께 호미질을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로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 역할이나 구역으로 작업반이 나뉘어져 있다면 각 분반의 일과를 알려 주세요.

△조별로 맡은 구역의 발굴조사 작업을 진행합니다. 하루 일과는 유구 보호를 위해 덮어두었던 ‘갑빠’를 여는 일에서 시작해 각자 맡은 지구에서 발굴조사를 돕습니다. 마무리는 역시 ‘갑빠’를 닫는 일로 끝이 납니다. 일과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12시에서 1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작업 중간에 10분에서 20분 정도 휴식 시간이 있습니다.

- 월성 발굴 작업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해자를 발굴 조사할 때 목간과 작은 토우, 씨앗 등을 건져냈던 일이 기억납니다. 해자의 펄을 걷어내는 작업이 꽤나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펄을 모두 물체질 해서 자칫하면 놓칠 수도 있었던 작은 유물들을 빠짐없이 찾아냈다는 것이 보람 있었습니다.

2010년 이집트 유적 발굴을 이끌고 있는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피라미드는 비참한 강제노동으로 노예들이 채찍질을 당하며 만든 게 아니라 자유로운 노동자 약 1만 명이 날마다 버펄로 21마리와 양 23마리를 식량으로 제공받으며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와스가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왕의 무덤 주변에 노동자들의 무덤이 자리했을 뿐더러, 노동자의 무덤 벽에 자신들을 ‘쿠푸 왕의 친구’라고 쓴 낙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란다.

덧붙여 발랄한 일설에 의하면 노동자들이 피라미드 건설에 자원한 이유가 물질적 보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험하고 고된 노동일지언정 ‘의미’와 ‘재미’마저 없다고 치부하는 건 또 다른 오만일지 모른다.

만약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작업반원으로 일해보고 싶었다. 발굴 작업마저 중단시킨 추위와 꽁꽁 얼어붙은 땅이 야속했다.

월성 발굴 C 지구에서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는 권세규 작업반장.
월성 발굴 C 지구에서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는 권세규 작업반장.

- 만약 제가 경력 없는 초보자로서 월성 발굴 작업에 참여한다면, 작업반장님은 어떤 일을 맡기시겠습니까?

△흙 나르는 것을 시키겠지요.(웃음) 초보자는 현장에서 파낸 흙을 나르는 작업부터 시작하는데, 경력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기보다 원하면 같은 작업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흙 나르는 작업자는 5명당 1명 정도로 배정되니까 1개 조에 3~4명 정도 필요하지요. 그 외 호미질 하는 작업반원들이 다수입니다.

- 월성 작업반에 취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젊은 사람들은 하지 않으려는 일인데 왜 그러시는지…(웃음) 보통 1년 계약직으로 결원이 생길 때마다 충원됩니다. 작업반원의 조건이라면 우선은 맡은 일을 해낼 만큼 건강해야겠지요. 2014년에 발굴조사를 시작할 때는 1945년생 이하라는 나이 조건이 있었습니다. 역할이나 경력에 무관하게 임금은 동일하게 받습니다.

권세규 씨는 1945년생, 해방둥이다. 기림사와 감은사지가 있는 경주시 양북면에서 태어나 7세에 부모님을 잃고 형제들에 의지해 어렵게 성장했다. 성인이 되어 결혼한 후에는 아내와 함께 성건동에서 40여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했다. 그러다 1995년 위암 수술을 받았고, 투병을 위해 식당을 접고 쉬던 중 건강이 얼마간 회복되면서 일거리를 찾다가 사설 발굴 조사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경주 시내는 개인 주택을 건축하거나 도로를 확장할 때 발굴조사가 필수라, 입찰을 통해 사설 업체에서 발굴조사 작업을 진행한다.) 6~7년 동안 사설 발굴조사에 참여하다가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되어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작업반원들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하게 되었다.

- 2014년 12월 월성 발굴조사가 시작될 때부터 작업에 참여하셨다면 월성의 초기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겠네요. 발굴조사의 시작은 어땠습니까?

△ 초기에는 잡풀이 무성한 언덕이었지요. 발굴 작업을 시작할 때는 일단 포클레인 같은 장비를 사용해서 가능한 지역을 파냅니다. 그 외에 유구에 탈이 날 수 있는 부분은 삽과 곡괭이, 그리고 호미와 꽃삽으로 작업합니다. 조원 15~16명이 모두 달라붙어 그 일을 하지요. 저의 경우 2014년 12월부터 2015년 말까지 왕궁 건물지에서 일했고, 2016년 초부터 2017년 말까지 해자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초부터 지금까지 왕궁 건물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초기 1년은 최태환 반장 밑에서 일했고, 해자 지역으로 이동할 때 작업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 사설로 다른 지역 발굴에도 참여하셨다니, 월성 지역의 특이점이 있나요?

△ 다른 곳과 달리 좀 더 시간적인 투자를 많이 해서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현장 관리도 철저하게 하는 편입니다. 여기는 사적(史蹟)이라 춥다고 해도 절대 현장에서 불을 피우지 못합니다. 또 연구자(학예사·연구원)들과 함께 일하니까 무작정 파고 진행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뭔가 나오거나 의문점이 생기면 바로 작업을 멈추었다가 해결하고 진행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자면 성벽에서 유골이 나왔던 때처럼, 특이하거나 귀중한 게 나오면 작업반원들은 일을 중단하고 물러서고 대신 연구원들이 작업을 합니다.

- 발굴조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되는군요. 작업반장님이 직접 찾은 유물들은 어떤 게 있나요?

△ 사실 왕궁 건물지는 유물이 편(片)으로 나오지 완품은 드뭅니다. 주로 기와의 막새나 귀면 같은 것들인데, 완전한 건 없고 금가고 깨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건물지의 경우 뭔가 좋은 보물 같은 것을 찾는다기보다 삶터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 그렇게 더딘 작업을 하루 종일 하다 보면 좀 지루하기도 하실 텐데…. 그래도 작업에 어떤 ‘재미’를 느끼는 분들도 있나요?

△ 물론 하루 종일 성과 없이 흙만 팔 수도 있습니다. 앉은 방석을 깔고 조금씩 움직이면서 땅을 팝니다. 가끔은 지루해서 옆 사람과 잡담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지하게 작업을 진행합니다. 뭘 찾는다고 보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이라도 찾을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일하지요. 재미까지는 모르겠지만, 작업반원 중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부업이자 취미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천 년 전 왕성이었던 월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해 보셨나요? 상상해 보셨다면 어떤 모습이었을 것 같나요?

△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왕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었으니 대단한 건물들이 가득하지 않았을까요?

- 문화재 발굴 작업의 현장에서 일하며 느끼는 감정은 어떠십니까? 자부심이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으신지요?

△ 저 역시 경주 사람입니다. 물론 밥벌이로 하는 일이지만,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땅에서 선조들의 흔적과 역사를 찾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