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관련 영상 중에서 소름 끼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호텔 방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김정은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하고 저만큼 입구 쪽에 떨어져서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쩔쩔매고 서 있는 북한 고위참모들의 모습이었다. ‘북미회담 결렬 직후’라고 소개된 영상은 지구촌에서 가장 혹독한 독재 군주의 나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컷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역사의 기원은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주들은 왕권신수설에 기초하여 권력분산 자체를 신성 모독이라고 규정했다. 계몽주의자들은 ‘법의 지배’ 아래에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상을 피력했다.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영감을 준 이 사상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오늘날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로 진화됐다.

평등한 참정권 등 여러 가지 기본요소가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가 정치권력에 의해 명시적으로 억압되고 제한되는 나라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구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는 일에 우리는 잠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일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다. 최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국회에 제출한 일명 ‘한국판 홀로코스트 방지법(반 5.18 방지법)’은 결코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개정안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비방 또는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과격한 극우 세력의 망발이나 시대착오적 ‘색깔론’ 횡포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설익은 의혹을 단정적으로 내놓는 무례한 발언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어떤 주장이나 행동이 옳지 않다면 그 비논리와 불합리를 비판받을 공간을 허용해주면 된다. 입을 틀어막거나 잡아 가둘 생각부터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반민주적이다.

1975년 3월 25일부터 1988년 12월 30일까지 대한민국 형법 제104조의2에 범죄로 규정되었던 국가모독죄(國家冒瀆罪)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로, 외환유치죄·간첩죄 등과 함께 있었던 이 법률은 여소야대가 된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12월 국회에서 삭제됐다. ‘국가모독죄’가 이슈가 된 계기는 시인 양성우의 ‘노예수첩 필화사건’이다. ‘겨울공화국’이라는 반골 시 한 편 때문에 교직을 잃은 그는 1977년 6월 발간된 일본 잡지에 유신을 비판하는 시를 실었다가 국가모독 및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0월 이 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민주주의의 진짜 반대개념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전체주의·군국주의·독재라는 정의에 동의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지구상에 창궐했던 많은 나라가 독재정권으로 변질했다가 사라진 것은 인류사의 부끄러운 기록이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제아무리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어도 그 체제나 행태 어디에도 ‘민주주의’는 없다.

인물이나 사건에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존재한다면 그 체제의 민주주의는 하자가 있는 것이다. ‘5.18’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마저 원천봉쇄하려는 움직임은 자제돼야 한다. 지금은 ‘평화’라는 명분이 만들어낼 지도 모를 또 다른 ‘재갈’을 걱정해야 할 때다. 양성우가 시 ‘겨울공화국’에서 묘사하듯이,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 기울이며/뼈 가르는 채찍질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나 머슴이나 허수아비로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저 서슬 퍼런 ‘역(逆)색깔론’ 망령부터 하루빨리 물리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