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헌정 포항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마음은 20대랍니다. 아직 청춘이지요.”

지휘자 임헌정(67)은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지휘 인생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 50만 소도시의 시립교향악단을 맡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임헌정은 일반인들에겐 그렇게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그렇지만, 클래식 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장’으로 통한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휘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임헌정은 신생교향악단이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25년간 이끌어 국내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로 성장시킨 음악가로 유명하다. 국내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1999∼2003년)로 ‘말러 붐’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베토벤·슈만·브람스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 세계를 깊숙이 파고들었던 탐색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취임(2014년)한 뒤 다시 한번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를 성공시키며 국내 음악계에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는 세계의 음악계가 한국 음악계를 주목하는 계기를 마련한 우리 음악계의 큰 기둥이다.

음악계의 거성 임헌정 지휘자가 지난 5년간 공석이었던 포항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던 날 한달음에 그를 만나러 갔다. 지난달 33년간 재직했던 서울대를 퇴직하고 막 포항을 찾아온 임 지휘자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났다. 마른 체구의 임 지휘자는 부드럽고 편안한 미소로 기자를 맞았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휘자
예술은 정신을 살찌우는 것… 재미있는 음악회 준비 중

-지방 중소도시인 포항시향 상임지휘를 맡았다. 음악계에서 화제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코리안심포닉오케스트라를 맡은 뒤에는 상임지휘를 하지 않았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겸직은 어렵다. 지난 2월 서울대를 퇴직했다. 원하는 곳에 가서 베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은.

△책 속에 길이 있다 하여 고금동서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독서를 강조했다. 나는 좋은 음악을 많이 들으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신의 영역에 다가가는 것이 예술이다. 그중 최고 높이 다가가는 것이 음악이다. 인간의 영혼을 다룬다.

-화려한 경력과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는 해석과 기획으로 관객과 평단의 주목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여러 작곡가의 곡을 릴레이로 연주하며 그들의 생애와 사상을 관객과 함께 탐구하고 음미하는 전곡 시리즈 연주를 많이 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이후 코리안심포니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유럽 투어 중 ‘린츠 브루크너 페스티벌’에 초청받았으며,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페스티벌 초청 연주 등을 통해 한국 음악계의 높은 수준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DECCA 레이블로 발매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은 2017년 미국 브루크너 협회의‘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휘자로 평가된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나의 고향은 청주다. 6·25전쟁 전후 세대이니 모두 가난한 시절이었다. 서울 사람들이 궁금했다. 이런 궁금함이 나를 성장시켰다. 누나, 형들이 ‘솔베이지의 노래’, 슈베르트 ‘세레나데’를 자주 불러줬다. 나를 키운 80%였다. 감성과 꿈많은 소년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오르간을 즐겨 쳤다. 레슨이란 것이 없었던 시절, 상상하고 살았다. 자유롭고 거리낌 없었던 시절이었다.

-신생교향악단이었던 부천시향을 국내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다. 포항시향에 거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예술은 온몸을 바치는 것이다.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영혼을 정화시킨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음악은 마음이다. 소리가 아니라 울림이 있어야 한다. 단원들은 열심히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음악은 마음을 바치면 된다. 음악은 기술을 넘어선 단계로 가야 한다. 단원들의 잘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단원들 한마음 모으면 소리 좋아진다. 양질의 음악으로 봉사하고 순수음악의 정신세계 지킬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돼야 한다. 좋은 소리 내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음악사의 한 전설이 됐다. 포항시향도 좋은 모범케이스로 남길 희망한다.

-중소도시 오케스트라를 맡았는데 개인적으로 큰 변화일 것 같다.

△인간들이 모인 곳은 조화가 필요하다. 나는 보람을 찾아야 한다. 기대치가 높을 텐데 조건들이 풀어져 갔으면 한다. 내가 할 일은 포항시향을 잘 만드는 것이다.

-포항시립교향악단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생각이신지.

△포항시향의 위상을 최대한 끌어올려 놓겠다. 단원들을 훈련해 소리 좋게 하는 일이 나의 일이다. 지휘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안 된다. 오케스트라를 성공시키려면 시는 시대로 홍보를 해야 하고 시민이 많이 와주어야 성공할 수 있다. 언론도 시민과의 소통창구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가인 임헌정 지휘자는 “양질의 음악으로 봉사하고 시민들의 정신세계 지킬 수 있는 심포니가 돼야 한다”며 “단원들이 한마음을 모으면 소리가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안성용 사진작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가인 임헌정 지휘자는 “양질의 음악으로 봉사하고 시민들의 정신세계 지킬 수 있는 심포니가 돼야 한다”며 “단원들이 한마음을 모으면 소리가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안성용 사진작가

-포항시민들에게 어떤 무대를 선보이고 싶나,

△예술 만능주의로 가면 시민들이 외면할 수 있다. 균형 잡힌 프로그램을 준비하겠다. 재밌는 음악회가 될 것이다. 연주회 전 전문 해설자를 초빙해 해설을 곁들이는 음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취임연주회(28일)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베토벤의 9개 교향곡과 7개 협주곡을 연주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이유가 있는지. 베토벤 음악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꽃피운 작곡가 베토벤의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성경과 같은 것이다. 베토벤은 인간의 모든 문제의 다양한 감정의 폭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곡가다. 베토벤의 작품은 단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작품이고 시민들에게는 좋은 서비스가 될 것이다. 또한 대외적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곡으로 고려해 선정했다.

-앞으로의 포부는.

△해오름동맹(포항, 울산, 경주)과 11월 세 도시 순회공연을 할 계획이다. 마침 말러 전곡을 연주한 지 20년 되는 해여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교향악과 합창 등 200여 명이 넘는 대규모 곡이다.

기독교 신자인 임 지휘자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회를 이끌어 간다. 예술은 각고의 훈련을 거쳐야 나온다.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사람의 정신을 살찌운다. 예술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서울과 세계 무대에서 환호와 찬사를 한몸에 받다가 지방 소도시에 초빙돼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임헌정. 그는 또 다른 도전의 전환점에 서 있고, 그 빛을 발하게 될 포항은 클래식 열풍 바이러스가 많은 시민에게 행복으로 전파될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임헌정 지휘자 프로필

-1953년 청주 생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매네스 음대 작곡·지휘 전공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 역임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상임지휘자 역임
-코리안심포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역임
-수상 : 2003 동아일보 선정 ‘국내 최고 지휘자’선정, 문화체육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 ‘한국음악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상)’, ‘대원음악상특별공헌상’, ‘보관문화훈장’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