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3·1운동의 뜨거운 물결이 한차례 지난 후, 1920년대 초반 민족과 나라의 미래를 오히려 긴 안목에서 바르게 세워갈 길은 어린이를 바르게 기르는 데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소파(小波) 방정환. ‘어린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으로 알려진 그는 어린이의 윤리적, 경제적, 민족적 독립(해방)을 주창하였으며 어린이들을 위해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여야 하고 민족의 미래와 희망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가 적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에는 “어린이들을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라고 권하며 어린이를 바르게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10년을 투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속담에 ‘아이를 기르는 일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고 하였다. 온 가족과 이웃, 학교와 동네가 한결같은 성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비로소 바른 인격체 하나가 만들어 질 수 있음을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교육이라 할 때에, 교육은 그 대상이 어릴수록 더욱 힘들고 그 뜻이 훨씬 무겁다. 어린이교육 가운데에도 유치원교육과 영유아교육에 관심이 가는 까닭도 바로 그래서일 터이다. 로버트 풀검의 베스트셀러 어린이 교육 관련 책은 제목을 아예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고 붙였다.

사람은 태어난 직후부터 정신과 정서의 발달이 시작되어 첫 3년 이내에 기초적인 뇌와 신경의 발달이 역동적으로 진행되며, 생애 첫 8년 안에 자의식과 자존감, 학습태도와 정서감각, 관계형성능력과 개인적 태도형성이 모두 완성된다고 한다. 유치원교육을 통하여 이후의 학습과 성장에 필요한 준비가 거의 다 이루어지며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태도와 소양이 모두 길러진다는 것이다. 향후 초중고등 교육에 임하기 전에 배움과 성장을 향한 열정의 강도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영유아교육과 어린이교육에 관하여 우리는 어떠한가. 어린이들을 길러내는 일에 저 만큼의 신중함과 한결같음이 우리에게 존재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최근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영문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볼모로 어른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던 일은 사안의 내용과 그 시급함을 차치하고라도 좋지 않은 여론을 스스로 불러온 꼴이 되고 말았다. 단 하루의 혼란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긴긴 방학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심대한 혼란과 불안감을 안겼을 터이다. 아이들을 앞세우기만 하면 현실에 쫓기는 어른들의 심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었다. 그런 태도야말로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을 쳐다보지 못하고 내려다 보는 구습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라도 어린이들의 내일과 나라의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교육의 첫 마음을 되새겨 어린이교육의 소중함을 다시 세워주기를 요청하고 싶다.

철학자 칸트(I. Kant)는 ‘인간은 오직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러 단계의 교육 가운데 가장 무거운 소명과 책임을 느껴야 할 영유아교육과 유치원교육에 관하여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어린 사람들을 상대로 하므로 보다 높은 기대를 걸어야 하고, 순결한 마음 밭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므로 더욱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를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 첫 걸음이 될 어린이교육이 바로서야 한다. 소명에 따라 헌신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이 오늘 힘내시기를 응원해 드린다. 어린이교육이 미래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