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숙 희

때론 보이지 않을 때 열려 오는 귀가 있다

달 없는 밤 냇가에 앉아 듣는 물소리는

세상의 옹이며 모소리를 둥근 율(律)로 풀어낸다

물과 돌이 빚어내는 저 무구함의 세계는

제 길 막는 돌에게 제 살 깎는 물에게

서로가 길 열어주려 몸 낮추는 소리다

누군가를 향해 세운 익명의 날(刀)이 있다면

냇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맡길 일이다

무채색 순한 경전이 가슴에 돌아들 것이니

냇가의 모난 돌들이 수많은 시간 동안 물 흐름에 깎이고 모지라져서 둥글고 매끈한 조약돌이 되듯이 세상의 옹이며 각진 모서리를 둥글고 부드러운 곡면으로 만들어 놓는 그 무엇은 없는 것일까를 궁리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귀 열고 마음을 열면 가득 물소리 경전이 흘러들 것이라는 시인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물은 겸허하게 낮은 데로 향하며 끊임없이 제 길을 가는 경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생을 바라보는 혜안이 깊고 그윽하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