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 시인
김현욱
시인

구글(Google)은 2004년과 2005년에 1만 5천명의 직원을 뽑았다. ‘오일러수가 담긴 광고판’이라는 기발한 채용방식도 이때 사용되었다. 2004년 7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101번 고속도로에 이상한 광고판이 세워졌다. 그 광고판에는 회사 이름도, 홍보하는 제품도 없었다. 하얀 바탕에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만 적혀 있었다. First 10-digit prime found in consecutive digits of e}.com

닷컴 앞에 필기체로 쓴 e는 오일러수를 뜻한다. 광고판을 해석하면,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10자리 소수를 찾아 닷컴 앞에 넣으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고속도로를 지나며 저 광고판을 보았지만, 대부분은 ‘저게 뭐야?’하고 그냥 지나쳤다. 물론 그중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오일러수를 찾아보는 소수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정답을 찾을 수 없다면 잠깐 호기심이 발동했던 소수의 사람들도 거기서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저게 뭘까?’, ‘10자리 소수를 입력하면 뭐가 나올까?’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문제를 풀어보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광고판을 본 사람들 중에 극소수의 사람만이 C++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7427466391’이라는 정답을 찾았을 것이다. 정답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한 사람은 ‘축하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좀 더 수준 높은 문제를 만난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 그 문제를 피할 리는 없다. 두 번째 문제까지 풀어 다음 페이지에 접속한 사람들은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구글 채용사이트로 접속하여 간단한 이력서 제출만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구글에 취직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위 글은 정재승 박사의 책 ‘열두 발자국’ 서문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필자라면 어땠을까 자문해보니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문학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덤볐을지 모른다. ‘오일러수가 담긴 광고판’은 당시 실리콘밸리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이렇게 뽑힌 사람들은 얼마나 창의적이고 열정적일까? 창의적인 사람들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관찰력이 뛰어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정재승 박사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호기심이나 꿈, 재미, 보람 등 다양한 내적 동기. 그리고 명예, 인정, 직위, 인센티브 등 외부에서 부여된 외적 동기. 이런 동기들에 지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천착하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가 잘 균형 잡힌 사람들이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시킨다.”고 정리했다. 최근 미국 일간지 LA타임스는 하버드 합격보다 더 어려운 한국 공무원시험 열풍을 꼬집었다. 하버드 입학률이 4.59%인데, 한국 공무원 합격률은 2.4%에 불과하다. 3년 넘게 공시를 준비한 어느 공시생의 사연을 소개하며,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다고 전했다. 공무원 열풍이 거세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중에 공공기관의 채용비리 백태도 한국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꺾는데 일조했다. 공정하지 못한 나라에서 그나마 공무원 시험이 공정하다는 인식도 크다. 구글처럼 창의적인 채용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된다면 공시열풍은 옛말이 될 것이다. 0.98명이라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 해결 비법도 여기에 있다. 참고로 세종시의 출산율은 1.5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