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76년. 시각 장애인들이 점자 책을 어렵게 읽는 모습을 보고 좀더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천재가 있습니다. 얼마를 고민하던 그가 뚝딱, 발명품을 내 놓습니다. 이름하여 Reading Machine(독서 기계)입니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작품이지요. 점자로 된 문서나 다른 사람이 녹음해준 테이프를 듣는 것이 고작이었던 시절, 이 기계를 이용하면 시각장애인도 혼자서 손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PC도 없던 40년 전에 이런 제품을 개발하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시각 장애인이 독서 기계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옵니다. 160㎏, 가격 5만달러나 하는 거대한 장치를 즉석에서 체험해 본 후 구입하지요. 늘 독서에 목말라 있던 그에게 이 기계는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밤새워 책에 빠져듭니다. 락 음악의 대부라 불리는 흑인 가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이야기입니다. 커즈와일과 스티비 원더는 이후 40년 우정을 이어가지요.

어떤 책은 맛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 어떤 책은 씹어서 소화를 시켜야 합니다. 책 중에는 가볍게 맛만 보고 넘어가도 될 것이 있고, 어떤 책은 단숨에 먹어 치울 수 있는 책도 있지만 고전의 경우는 꼭꼭 씹어서 잘 소화시켜야 하는 책도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책은 도끼여야 한다는 이야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지요. 즐거움을 위해 읽는 독서와는 다른 비장함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얼어붙기 쉬운지, 내 안의 인식체계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 우리의 사고 방식은 늘 내가 편한대로 보고, 느끼고 결론 내리기 쉬운지를 인정해야 카프카의 독서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그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주인공 마르코 폴로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지옥 같은 세상을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옥 속에 살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세상 속에서 지옥 아닌 것을 찾아내고 지속시키고 그것들이 자라갈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독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대를 포함 오늘 이 순간도 지옥 속에 살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어떤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따스한 마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