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도쿄 빈민가에서 태어나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자란 한 아이가 있습니다. 해방 후 먹고 살 길을 찾아 귀국해 경북 청송군 현서에 정착합니다. 이때 동네 교회를 잠시 다닙니다. 거기서 소년은 눈빛이 살아있는 선생님 한 분을 만납니다. 고달픈 삶에 선생님의 이야기는 생명이자 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연도 잠시, 안동으로 옮겨 나무꾼, 고구마 장수, 날품팔이로 연명합니다.

열 아홉 살 청년이 된 그는 폐결핵을 앓더니 이내 신장 결핵과 방광결핵으로 번져 온 몸이 망가집니다. 의사는 조심해 살면 2년 정도 더 살 수 있다 합니다. 평생 오줌통을 몸에 차고 살아가야 하지요. 안동 일직교회 토담 방 한 칸을 얻어 평생을 종지기로 살아갑니다.

뚫린 창호지 구멍으로 개구리가 들어와 방에서 개굴거리고 생쥐들이 침입해 발가락을 깨무는 비천한 나날이지만 규칙적인 생활로 다행히 건강을 조금 회복합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에 몇 줄 글을 씁니다. 어린 시절 맑은 눈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주일학교 선생님을 기억하지요. 아픈 몸을 달래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 신춘문예에 응모합니다. 탈락 후 전달해 주는 심사평을 스승 삼아 자신의 글을 다듬습니다. 심사평이 결국 글쓰기 코칭이 된 것이지요.

‘몽실 언니’, ‘강아지 똥’을 쓴 권정생 선생 이야기입니다. 그의 작품을 유심히 본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권정생의 글에 흠뻑 취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우리말 솜씨에 반해 권정생을 찾습니다. 서로 기억을 못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눈빛 맑고 빛나던 그 분입니다. 이오덕 선생이 바로 그 주일학교 선생이었지요. 이후 두 사람은 평생 동지가 되어 서로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이오덕을 만난 이후 권정생의 삶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2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예언은 보기 좋게 틀렸습니다. 70년을 동화와 함께 살아온 권정생은 90편의 작품을 남깁니다.

2007년 장례식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명사들이 몰려오자 동네 사람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가난한 종지기로만 알았던 권정생이 그렇게 유명한 동화작가인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연 1억원이 넘게 들어오는 인세와 10억원의 통장을 어린이를 위해 써 달라는 유언과 함께 70세 고단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그의 이름 두 글자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정생(正生) 바른 삶입니다. 올바르고 정의로우며 향기로운 삶입니다. 권정생 선생의 얼굴을 들여다 보니 소크라테스와 많이 닮았습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