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이후, 그 책임을 둘러싸고 양쪽이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북미가 따로 하는 주장이야 그렇다 치고,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서에 접근하는 북한의 전략이 노출됐다는 측면에서 이번 회담 결렬은 시사하는 바가 강렬하다. 그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우리가 소망에 눈이 어두워 잘못 기대한 대목은 없는지 새롭게 돌아봐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낭만적인 감상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

이번 회담에서 합의를 막아선 것은 북한이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카드의 기만적인 성격 때문이다. 아마도 북한은 오랫동안 이미 노출된 영변 핵시설 이외에 극비시설들을 구축해왔던 모양이다. 영변을 내놓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게끔 준비를 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정보능력을 갖춘 미국이 이를 간파했을 것이고, 적어도 회담장에서 북한이 진정성을 담보하기를 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영변에는 연간 약 7㎏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5㎿e 원자로와 2천 개의 원심분리기가 설치된 우라늄농축시설 등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 북한 핵무력 고도화의 심장부다. 그러나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영변 이외에 숨겨진 핵 시설을 줄기차게 거론해왔다. 평양 외곽의 강산과 평안북도 박천과 태천, 황해북도 평산 등에 핵 시설이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곳부터 먼저 비핵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북한이 내놓은 반대급부 조건도 무리하다. 회담 결렬 직후 북한 외무상 리용호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요구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民需)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의 요구는 사실상 대북 제재의 99% 해제를 요구한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고철 덩어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국제사회 제재를 완전히 허물어뜨리려는 속셈이 아니었나 비판받고 있다.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북한은 비밀 핵시설을 숨긴 채 대북제재를 모두 풀어내고 남한을 예속화하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심히 의심스럽다. ‘전쟁 종식’ 갈망에 빠져 저들이 한 번도 말하지 않은 ‘북한 비핵화’라는 수식어에 터무니없이 취해 낭만적 ‘평화’감상에 젖어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 할 말을 삼키고 사는 우리는 이미 저들의 묵시적 ‘핵 인질’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저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효율적인 대응이다. 북한을 다시 봐야 한다. 하노이 북미협상 결렬 책임을 놓고 슬금슬금 깝치기 시작한 반미주의 외눈박이들의 행태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