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경북의 멋과 맛을 찾아서
⑧ 귀한 사위 오면 잡아야 하는 씨암탉, 그 눈물나는 사연

5Kg 이상의 장닭으로 끓여낸 장닭 백숙. 닭고기 맛이 깊다.

닭은 억울하다.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이 있다. 꿩이 좋다, 꿩이 닭보다 맛있다는 뜻이다. 꿩이 ‘갑’이다. 의문스럽다. 과연 꿩이 닭보다 나은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오해다. 꿩보다 못하다니, 닭으로선 억울할 노릇이다.

왜 꿩이 먼저일까? 간단하다. 꿩은 공짜다. 요즘은 꿩이 없다? 그렇지 않다. 꿩은 지금도 있다. 꿩을 잡는데 품이 많이 드니 기른다. 예전에는 ‘인건비’ 개념이 없었다. 꿩은 공짜고 닭은 집에서 기르던 것을 잡아야 하니 ‘재산’이 줄어든다.

 

우리는, 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20여 일 기른 어린 병아리를 몸보신하겠다고 먹는다. 우리 시대의 천박함이다. 아무 맛이 없으니 조미료와 각종 양념, 견과류를 뒤섞는다. ‘영계’를 먹는 것은 ‘음식의 성희롱’이다.

주변 지인 중에 북한 출신의 80대 노인이 있다. 가끔 식사를 같이 한다. 늘 하는 이야기가 “내레 피양에서 중학교 다닐 때 말이야”로 시작하는 꿩 잡았던 이야기다. 월남 직전까지 이분의 집안 어른이 평양에서 냉면 집을 운영했다. 겨울철이면 형들을 따라서 눈 덮인 산에서 꿩을 잡았노라고 했다. 그걸로 국물 내고, 살코기는 냉면 고명으로 썼다. 이른바 ‘꿩고기 냉면’이다.

꿩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꿩 대신 닭이다. 아깝지만, 닭을 사용해야 한다. 꿩 대신 닭은 ‘공짜 대신 아깝고 귀한 것’의 개념이다. 닭이 꿩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니다. 꿩은 개체가 무척 작다. 비경제적이다.

야생 꿩은 특유의 누린내와 신맛이 있다. 꿩은 새다. 새의 뼈는 가볍다. 꿩의 뼈는 가늘고 속이 텅텅 비어 있다. 발라내기 번거롭다. 칼로 다진다. 꿩고기 만두를 먹다보면 작은 뼈 조각이 씹힐 때도 있다. 꿩고기를 몇 번만 먹어보면 “닭이 억울하다”는 확신이 든다.

닭의 억울함을 입증할 근거(?)도 있다. 찜닭을 올리는 제사는 있어도 꿩을 사용하는 제사는 드물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 하는 주요 도구다.

귀한 음식은 제사상과 손님상에 오른다. 닭고기는 제사에 사용할 정도로 귀한 식재료였다. 태종18년(1418년) 5월 9일의 어전회의에서 엉뚱하게도 닭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소경공(昭頃公)이 평소에 쇠고기를 좋아하였으니, 삭망제에 내가 이를 천신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물건이 심히 크니 가볍게 쓸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혹은 연빈(燕賓)이 있거나 혹은 종묘에 제사할 때 이를 천신하는 것이 어떠할까 한다.’ 여러 대언(代言)이 대답하기를, ‘옳습니다.’ 하니, 또 명하였다. ‘희생(犧牲)으로 계를 쓰는 것이 예(禮)에 있느냐?’ 여러 대언이, 계는 ‘닭’을 말하는데, 희생에 계를 쓰는 것이 고례(古禮)입니다’ 하니, 임금이, ‘소경공이 또 닭고기를 좋아하였다’ 하고, 즉시 본궁의 사람에게 명하여 닭을 길러서 5일에 한 마리를 삶아서 천신하는 것으로써 항식(恒式)을 삼게 하였다.”

 

안동찜닭에는 양배추를 비롯해 마른 고추 썬 것, 부추, 당근, 당면 등이 들어간다. 백숙, 삼계탕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안동찜닭에는 양배추를 비롯해 마른 고추 썬 것, 부추, 당근, 당면 등이 들어간다. 백숙, 삼계탕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태종에게는 양녕, 효녕, 충녕 이외에 4번째 왕자가 있었다. 늦둥이 성녕대군(소경공)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가 이해 3월에 죽었다. 14살. 아버지 태종은, 쇠고기를 아들의 제사상에 놓고 싶으나 소는 너무 크다. 중국사신(연빈)이 오거나 종묘 제사 때 소를 도축한다[‘봉제사접빈객’이다]. 그때 쓰자. 소 대신 닭이다. 평소에는 닭을 올리자.

어색한 부분도 있다. 태종은 고려 말기 과거에 급제한 문관이다.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공부한 사람이 제사에 닭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유교의 육축, 즉 인간이 먹을 수 있는 6가지 가축은 소, 말, 개, 돼지, 양, 닭이다. 문관 출신 국왕이 닭이 육축의 하나임을 몰랐을까? 굳이 신하들에게 묻는 절차를 거친 것은 이미지를 위한 ‘쇼’가 아니었을까, 라고 믿는다.

“귀한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고 이야기한다. 이 표현에도 오해가 있다. 씨암탉은 귀한, 맛있는 닭이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 씨암탉은 이듬해 병아리를 생산을 위해 아껴둔 닭이다. 아깝지만 반드시 맛있지는 않다.

이른 봄철, 닭이 알을 낳는다. 스무 개쯤의 달걀을 모아서 암탉이 품는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대략 15~20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난다. 여름이 된다. 자라고 있는 닭을 한두 마리씩 먹는다. 이때의 닭이 살이 부드럽고 연한 닭, 연계(軟鷄)다. 달걀도 낳고 여름, 가을을 지나며 한두 마리씩 줄어든다. 크기도 제법 크다. 달걀을 낳지 않는 수컷을 먼저 해치운다.

늦가을 암컷 몇 마리와 수컷 한두 마리가 남는다. 추수도 끝나고 날씨도 춥다. 문제는 먹이다. 한겨울에는 오롯이 곡물로 닭을 키워야 한다. 들판은 곧 얼 것이다. 잡초, 씨앗도 귀하고 벌레들도 귀하다. 한두 마리 정도의 암탉만 남긴다. 씨암탉, 내년의 병아리를 위한 것이다. 겨울철 귀한 사위가 왔다. 귀한 손님이니 고기를 내놓아야 한다. 농촌에 고기가 있을 리 없다. 마지막 남은 것이 씨암탉이다. 고기가 맛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년을 위해서 아껴둔 닭이다. ‘그것까지’ 내놓는 것이다.

 

이제는 사라진 닭국. 사위에게 대접한 씨암탉은 아마도 이런 형태의 닭국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사라진 닭국. 사위에게 대접한 씨암탉은 아마도 이런 형태의 닭국이었을 것이다.

‘음식디미방’에는 ‘수증계(水蒸鷄)’라는 음식이 있다. 물에 찐, 끓인 닭찜이다.

암탉은 손질하여 기름을 넣고 볶는다. 맹물을 부어 토란, 순무 등을 넣고 삶는다. 고기와 나물을 건져내고 국물에 장으로 간을 잡는다. 고기와 나물을 다시 넣고 밀가루를 푼다. 파, 염교, 동아, 오이 등 채소를 넣고 끓인다. 다 익으면 마치 잡채 쟁반 같이 나물, 고기를 펼치고 국물을 붓는다. 그 위에 계란지단을 얹고 후추, 생강 등을 뿌린다. 지금의 ‘안동찜닭’과 흡사하다.

국수를 좋아하는 안동 지역 사람들이 국수와 비슷한 당면을 쉽게 받아들였다. 당면과 각종 채소를 넣고 손질한 닭고기를 넣은 다음, 간장 양념으로 졸인다. 채소가 당근 등으로 변했을 뿐 안동찜닭은 수증계와 흡사하다.

대척점에는 백숙(白熟), 삼계탕이 있다. 백숙은 흰 닭찜이 아니다. 백숙은 별다른 양념없이 닭을 찌거나 삶았다는 뜻이다. 백수(白手)는 흰 손이 아니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 손이다. 백숙은 수증계처럼 양념을 하거나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닭을 찌거나 삶은 것이다.

삼계탕(蔘鷄湯)은 우리 시대의 음식이다. ‘인삼이 들어간 백숙’이다. ‘안동찜닭’이나 ‘수증계’처럼 찌고, 삶고, 졸이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별다른 양념 없이 한번 끓일 뿐이다. 삼계탕에는 수삼(水蔘)을 사용한다. 수삼은 건삼, 홍삼과 달리 냉장 유통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냉장유통은 1960년대 무렵에 시작되었다. 도로 사정도 나아졌다. 수삼을 멀리 보내는 일도 가능해졌다. 닭고기에 수삼을 얹은 음식, 계삼탕(鷄蔘湯)이 삼계탕으로 이름을 바꾼다.

수증계가 안동찜닭과 비슷하다면 삼계탕은 백숙과 닮았다. 문제는 음식에 사용하는 닭의 크기다. 삼계탕의 닭은 대략 550~600g 정도다. 닭이 아니라 병아리다. 20여 일 ‘닭 공장’에서 ‘찍어낸’ 닭들이다. 닭고기의 맛이 있을 리 없다. 삼계탕에 들깨를 비롯한 견과류를 많이 얹는 이유다.

‘영계백숙’도 엉터리다. ‘영계’라는 닭은 없다. 영계는 ‘YOUNG(영)+鷄(계)’다. ‘영계(英鷄)’는 광물질인 석영(石英)을 먹여서 기른 닭이다. 중국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시작된 표현이다. ‘본초강목’에 “석영을 먹여서 기른 닭(석영)이 낳은 알이 약효가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뿐이다. ‘영계백숙’은 ‘연계백숙(軟鷄白熟)’에서 파생된 단어일 것이다. 연계는 어린 닭이다. 대략 100일 정도 지나면 닭은 중간 크기의 몸집을 지닌다. 부드럽고 연하다. 사육기간 20여 일은 잔망스럽다.

‘일성록’ 정조 24년(1800년) 5월 22일의 기록에 닭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

 

안동 구시장 찜닭 골목. 정확하게는 찜닭이 아니라 ‘매운 간장 닭조림’이다.
안동 구시장 찜닭 골목. 정확하게는 찜닭이 아니라 ‘매운 간장 닭조림’이다.

“(전략) 대체로 진배(進排)하는 생계(生鷄)에는 모두 세 가지 명색(名色)이 있습니다. 여러 해 자란 닭을 진계(陳鷄)라고 하고 부화된 지 얼마 안 되는 것을 연계(軟鷄)라고 하며 진계도 아니고 연계도 아닌 것을 활계(活鷄)라고 합니다. 무신년(1788) 이후로 여름철에 대신 바칠 때에는 연계를 진배하고 겨울철에 대신 봉진할 때에는 활계를 진배하며 혹 아래에서 대신 사용하는 경우에는 진계를 진배한 전례도 있습니다. (중략) 지금부터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막론하고 대신 봉진할 때에는 모두 활계로 봉진하고 (중략) 또 부득이 진계를 사용해야 할 경우가 있으면 진계 1마리를 활계 2마리로 쳐서 계산해 줄여 주라는 내용으로 정식을 정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략)”

닭에 대해서 상세히 규정한다. 여름철 무렵의 닭은 연계, 1년이 되지 않은 산 닭은 활계, 1년을 넘긴 묵은 닭은 진계다. 여름에는 연계, 겨울에는 활계를 세금으로 바친다. 가끔 실무자 급 하급관리들이 활계 대신 비싼 진계를 요구한다. 만약 공식적으로 진계가 필요하면 진계 한 마리에 활계 두 마리로 셈하자고 청한다. 묵은 닭, 해를 넘긴 큰 것은 일반적인 닭 값의 두 배다.

우리는, 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20여 일 기른 어린 병아리를 몸보신하겠다고 먹는다. 우리 시대의 천박함이다. 아무 맛이 없으니 조미료와 각종 양념, 견과류를 뒤섞는다. ‘영계’를 먹는 것은 ‘음식의 성희롱’이다.

사족으로 개인적인 바람을 적는다.

안동 구 시장에는 찜닭골목이 있다. 40년 정도의 업력을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다. 오래 전에 전국적으로 ‘봉추찜닭’을 유행시킨 것도 안동, 안동찜닭의 힘이다. 업력 40년이 아니다. 350년 전의 ‘음식디미방’에 수증계가 있다. 안동찜닭과 흡사하다. 왜 스토리텔링으로 이용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저자 장계향이 바로 안동 출신이다.

더 답답한 것은 경주다. 경주는 계림(鷄林)이다. 신라의 왕도를 이은 것은 알에서 태어난 김알지의 후손들이다. 계림은 경주 일대, 신라 더 나아가서 한반도 전체를 이르는 표현이었다. 외국 자료에도 계림은 남아 있다.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이름에 걸맞은 ‘계림 스타일의 닭고기 요리’ 한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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