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순 덕

남산에 다녀오다 소나기 만났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국지성 호우

아무리 찾아도 비 피할 만한 처마 하나 없다

요즘 집들은 네모지고 까칠하기만 해

한 점의 빈 공간 허락지 않는다

밀이나 코 말릴 멍석 놓여있거나

겨우내 소들 먹일 짚 쌓여있거나

호미나 삽 괭이가 걸려있거나

숨바꼭질할 수 있는 처마

빗물 하나 고일 데 없고

마음 하나 스밀 데 없는 회색빛 건물 아래

비바람 튕겨 나간다

비 그을 데 없는 아파트 홀딱 비를 맞는다

현대사회의 각박함을 야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도심 속의 건물들이 네모지고 까칠하여 한 점의 공간도 허락지 않는 긴장되고 불안한 공간이라고 지적하면서 여유롭고 넉넉한 여백과 푸근함과 편안함을 주는 공간을 옹호하고 염원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