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당해 수억 원 빚을 짊어진 남자가 있습니다. 부도가 난 직후 부인은 바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멈출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회사 돈을 가로채 부도를 일으킨 원수같은 놈이 날마다 꿈에 나타납니다. 칼로 난도질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납니다. 깨어보면 지하도에 신문을 덮고 누워있습니다.

며칠을 굶었습니다. 너무 배고파 하늘이 노랗게 보입니다. 용산역 출구로 나가 삼각지 인근 마을을 배회하다 골목 국수집 하나를 발견하지요. “할머니. 여기 국수 곱배기 한 그릇요!” 먹고나서 잽싸게 도망칠 생각으로 호기롭게 주문합니다. 테이블 네 개 밖에 없는 작은 가게. 할머니는 남자가 한 그릇을 비우기 무섭게 그릇을 빼앗아 이내 한 그릇을 더 퍼옵니다. “천천히 드시우. 체할라…”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남자는 다시 국수를 입에 쏟아 붓기 바쁩니다. 세 그릇을 다 비운 남자는 냅다 도망칩니다. 수치심과 분노가 뒤엉킨 슬픈 눈을 질끈 감은 채 골목길을 내 달리지요.

급하게 문 여는 소리에 상황을 파악한 할머니가 뒤 쫓아 나옵니다. 남자의 등 뒤에 대고 크게 외칩니다. “그냥 가! 뛰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 천천히 가!” 코너를 꺾어 마구 달리던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멈춥니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합니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입니다. 한 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국수집 할머니의 한 마디가 이 남자의 분노를 도려냅니다. 얼마를 울었을까요. 울화와 비통함, 분노가 흐르는 눈물에 씻겨 내립니다.

15년 세월이 흘러 할머니 국수집이 맛집으로 방송에 소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방송국에 전화 한 통이 울립니다. 중남미 파라과이에서 한 중년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 국수집 할머니가 노숙자였던 자신에게 따스하게 용서의 말을 외치셨던 분이라며 PD에게 몇 번이나 한국 방문할 때 꼭 할머니를 찾아 뵙겠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 한 마디에 세상에 대한 증오를 다 내려 놓고 재기를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이역만리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일으켜 큰 성공을 일구었다고 하지요. 용서가 살려낸 인생입니다.

험난한 시대 누구나 마음 속 응어리진 분노 한 웅큼 품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용서를 영어로는 ‘Forgive’라고 하지요. 누군가를 위하여(For), 내어주는(give) 행위가 용서입니다. 가장 큰 선물이지요. 오늘 우리는 누구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