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형의 영화 읽기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The Past)’

△미끄러지는 사건과 진실들

주고 받는 말들이 심상찮다. 부드럽고 일상적인 대화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예사롭지 않다. 일상의 어디쯤이라고 생각했던 짐작은 번번히 비껴가고, 차갑고 무거운 진실은 예상을 빗나가고 이리저리 자취를 감추며 날렵하게 숨는다.

이혼과 결혼을 앞둔 이들과 가족의 일상. 파리의 공항에서 시작된 영화는 다정한 부부사이가 아니라 4년의 별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이혼합의를 위한 만남이었다. 4년 만에 ‘깔끔한 정리’를 위해 아마드는 마리와 공항에서의 재회를 한다. 아마드와 마리가 살던 집. 그녀가 전남편의 사이에서 낳은 두 명의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메일의 내용과 전달에 대해서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가볍고 지극히 평범했던 상황이 등장인물이 한명씩 늘어 갈수록 조금씩 엉뚱한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마리의 등장. 공항에서 나가는 방향을 찾던 아마드의 등장. 마리의 집에 도착했을 때 마당에서 놀던 그녀의 둘째 딸 레아와 낯선 남자아이. 마당에서 놀던 낯선 남자아이의 친아버지이며 마리와 결혼을 준비중인 사미르 등장. 그리고 큰 딸 루시의 등장. 이러한 순차적인 등장의 중심에는 마리가 있다. 마리는 등장하는 모든 이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사람이다. 세 명의 남자, 이혼을 앞둔 아마드와 결혼을 앞둔 사미르와 그의 아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세 명의 여자는 모두를 알고 세 명의 남자는 첫 대면이다.

세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그리고 다시 한 번 아마드와 이혼을 예정하고 있으며, 사미르와 결혼을 앞 둔 마리. 세탁소를 운영하며 갑작스러운 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두고 있으며 마리와 동거하며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미르.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이지만 아마드를 ‘아빠’라고 부르며 따르는 두 딸들. 이들이 머물렀고 머무르고자 하는 마리의 집.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깊게 잠자고 있던 갈등들이 하나 둘씩 터져 나오고…. 그것들이 끓어 오르며 부딪치는 장소가 바로 마리의 집이다.

이 순서들을 따라 관객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하고, 누가 더 상처받고 불쌍하며, 잔인한가를 은연중에 가늠한다.

하지만 감정이입은 연이어 등장하는 인물과 대화를 통해 보기좋게 배신당하고, 이곳과 저곳, 배우들을 따라 다니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누가 더 악하고 누가 더 선한가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조금씩 선하고 조금씩 이기적이며, 마음과 다르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관계에 놓여 있다.

한번쯤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주고 받았던 신뢰와 믿음, 배신과 상처의 모습과 다름 아니다.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The Past)’.
영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The Past)’.

 

△믿음과 진실의 변화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

여기에 아마드가 마리의 큰 딸인 루시로부터 ‘사마르의 아내가 왜 자살을 시도했는가’를 듣게 되면서 누구를 믿어야하며, 누구를 두둔하고 위로해야하는가에 대한 혼란이 시작된다. 믿을 수 없는 사실, 진실을 확인할수록 거기 또 다른 사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리고 곧장 영화는 ‘진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상의 스릴러’ 영화가 된다.

국내에 소개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세일즈맨’ 역시 평범했던 일상에 던져진 파문과 반전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스릴러’ 라는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공권력이나 정치적인 목적, 원한과 복수의 과정을 화려한 액션과 함께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우발적인 평범한 사건의 진실을 파고든다.

비록 시작은 작은 구멍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고들수록 깊고 커다란 구멍을 남기는 묵직함이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에 이어진다.

진실이 믿음의 문제라고 했을 때, 그 믿음이 또 다른 사실의 확인으로 이어질 때 진실에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 의문을 쫓아 다시 한발짝 들어가지만 그것 역시 진실인지 모를 불완전하고 모호한 상태에 이른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원래 제목은 ‘The Past, 과거’다. 미래를 위해 현재 이곳에 모였지만 과거에 발목이 잡혀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지키고 머물러야할 공간에 결국은 아무도 머물지 못한다. 미래를 위해 모이고 만났던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과거의 공유되지 않은 기억들이다. 하나 둘씩 드러나는 사실로 인해 그들이 마음 둘 곳이라고는 물리적·정서적으로 아무 것도 어디에도 없는 상태로 흘러간다.

과거의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드러나는 진실마다 묵직하다. 거기에 모든 사건마다 이유가 존재하니 사건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감정이입의 단계가 순조롭지 못하다. 시작은 누가 더 ‘염치’없는가를 말하는 듯하다가 누가 더 ‘상처’받은 존재인가로 옮겨 간다.

 

 

△아물지 않는 과거의 상처들

마리는 사마르의 아이를 임신하고 결혼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아마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아마드 역시 미처 다 못챙긴 4년 전의 짐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짐들이 있다. 이혼 판결을 위해 법원 복도에 앉아 임신 사실을 아마드에게 말하는 마리의 심리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마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이고 그 상처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자하는 미묘한 심리가 함께 한다.

이는 마리와 결혼을 앞두고도 혼수상태의 아내를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사마르. “왔다가 잠시 머물다 떠났다”라고 엄마를 거쳐갔던 남자들에 대한 불안감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 루시 역시 그러하다.

마리와 어린 막내 딸 레아를 제외하고 모두가 한 번 이상 그 집을 떠나고 싶어하거나 떠난다. 도덕적이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가 아니다.

비난의 대상이 진실에 접근해 갈수록 연민의 대상이 되고, 연민의 대상이 비난의 대상으로 위치를 옮겨 앉는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진실은 모호하게 남는다.

영화 후반부 진실은 모호해지고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채 놓여 있을 때, 아마드는 마리에게 자신이 “4년 전에 왜 떠났는가에 대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마리는 끝내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이제 해답은 관객의 몫으로 남고,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등장하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영화의 흐름에 따라 등장인물 모두에게로 감정이입이 옮겨 다니고, 사건을 물고 들어가는 흐름이 대단하다. 거기에 은유와 상징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대사 하나에까지 실마리들이 내표되어 있으니 상당한 몰입을 요하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몰입의 단계를 높여가게 만드는 솜씨가 좋다.

이야기는 리듬을 타고, 감정이 함께 그 리듬을 따라 흐르고, 사건은 감정을 이끌다가 뒤집고 막다른 골목길로 내몰기도 한다. 미래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지만 그 자리 역시 편하지 못하다. 이후가 궁금하지만 마지막 장면으로도 감정을 곱씹기에 벅차다.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을 만나게 될 것이다.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이란의 영화 감독으로 2003년 장편 영화 ‘사막의 춤’으로 데뷔하였으며, 각본가이기도 하다. 국내에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외에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세일즈맨(2016)’이 소개되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이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보게 되면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일관된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