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세계의 이목이 베트남의 하노이로 쏠리고 있다.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는 어떤 합의문이 발표될 것인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획기적인 합의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북미 간에는 완전한 비핵화, 대북 제재 해제, 종전선언과 평화 협정 체결이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은 북미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주변 국가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는 문제이다. 주변 4강은 겉으로는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표방하지만 내심으로는 자국의 실익을 우선하려고 한다. 이 점이 우리의 4강 외교가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미국의 입장부터 살펴보자.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미 대륙 침공이 최우선적 관심사이다. 미국은 북핵으로 인한 미국인들의 안보 불안제거라는 입장에서 북핵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트럼프는 북한의 직접적인 핵실험 등 핵위협이 없었더라면 북한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치 않았을 것이다. 미국 언론도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북핵 협상으로 타개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와의 내통관련 뮬러 특검의 조사 결과발표에 따라 탄핵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이를 희석시키고 내년 재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대북 협상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그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제재와 대북 투자라는 채찍과 당근 전술을 구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도 한반도 문제를 자국의 이익확대라는 관점에서 추진하는 것은 미국과 비슷하다. 중국은 북한이 종국적으로 북미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중국의 세계 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 중국은 오히려 내심으로 북한이 미국 제국주의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종전의 정책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종래의 순망치한(脣亡齒寒)에서 보듯이 친중적인 북한 정권이 중국의 입술역할을 기대하면서 북한이 대미 방어전선의 교두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열세인 북한지역의 광산이나 나진 등에 투자하고 북한 소비시장에도 영향력을 확대중이다. 이런 정황에서 중국은 미국이나 남한 자본의 북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종전선언 당사자임을 강조하면서 간여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 당국이 김정은을 수시로 다독이는 외교도 이런 연유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미국의 동북아 외교는 적극 지지한다. 일본은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이 정상국가로 대접받으면 대일 청구권 등 골칫거리가 등장할 것을 우려한다. 과거 6·25 전쟁 때 군수 보급 기지로 재미를 본 일본은 현재의 분단 상황을 내심으로 즐길지도 모른다. 러시아 역시 미국에 대해 각을 세우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자신의 역할을 행사하려고 한다. 그들은 태평양 진출을 위한 북한 항구개방에 관심이 많으며, 북한 경유 가스 라인의 남한 연결 등 경제적 이득을 노리고 있다. 러·일은 공히 남북의 화해나 북미 평화 협정보다는 과거 6자회담의 당사자로 회귀하여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주변 4강의 이러한 자국 이익우선의 원칙은 한반도의 평화 체제 수립의 본질적 장애물이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 보장을 위해 주변 4강 외교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과거 통일 전 서독은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외교를 유지하면서도 대소, 대 동구 외교를 교묘하게 추진하였다. 그것이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 우리도 주변 4강 외교를 현 수준에서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한류 등 문화적 우수성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외교에는 경제력 못지않게 문화적 헤게모니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도 너무 조급한 접근은 경계하면서 경제 협력과 문화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완전한 통일이전의 ‘사실상의 통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