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김진태 의원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지만원 씨가 ‘편견’ 굿판을 벌이고, 이종명·김순례 의원이 덩달아 춤을 춘 ‘5·18 망언’ 소동 후폭풍이 자유한국당을 막다른 골목길로 몰아가고 있다. ‘5·18 망언’ 사태는 경제정책실패와 북한 비핵화 지지부진의 여파, 당정 인사들의 잇따른 구설수 늪에서 버둥거리던 청와대와 민주당, 그리고 진보세력 모두에게 반격의 핵폭탄을 제공한 망동이다.

봄 날씨를 연상시키는 따뜻한 주말 청계광장이 사람들로 넘쳐났다. 5·18 비상시국회의와 5·18역사왜곡처벌 광주운동본부가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 왜곡·모독·망언 3인 국회의원 퇴출! 5·18 학살 역사 왜곡 처벌법 제정! 자유한국당 해체! 범국민대회’라는 외우기도 힘든 긴 이름의 행사에 광주에서만 1천500여명 시민들이 상경했단다.

참여시민단체가 550여 개라고 발표된 이 날 집회에는 여야 4당 소속 국회의원 20여 명과 이용섭 광주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도 참석했다. 집회에서는 ‘지만원 구속’‘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퇴출’ ‘5·18 왜곡 처벌 특별법 제정’ ‘5·18 진상조사위 출범 협조’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인근 지역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보수성향의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5·18 가짜 유공자를 공개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주장하며 5·18 망언규탄 시위대에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이 날의 태극기집회가 자아내는 보편적 공명은 미미했다.

그런데, 일방적 군중심리의 여파로 추진되는 이른바 ‘5·18 망언 처벌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개정안은 5·18을 비방·왜곡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7년 이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안 발의에 동참한 국회의원은 모두 166명에 이른다니 심각한 일이다.

입법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독일과 프랑스 등의 경우들을 사례로 든다. 독일은 1985년 형법 제130조 3항에 ‘홀로코스트 부인’을 금지하는 규정을 담았다. 형법 86조에 나치 상징 깃발과 슬로건을 사용할 경우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엄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도 1990년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나치학살 부인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5·18 망언 처벌법’이라는 이름의 개정안은 이렇게 허투루 다룰 법안이 결코 아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야만의 칼로 악용될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현령비현령이거나 견강부회의 궤변기술을 동원해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시킬 여지가 다분하다. 갖가지 편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난도질했던 뼈아픈 정치사를 아직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지리멸렬의 뻘밭에서 도무지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형편이다. 27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가 한국당을 살려낼 가능성은 여전히 높지 않다. 국민의 가슴이 뭉클하도록 ‘혁신과 부활’의 기적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상처를 후벼 파는 드잡이판이 되어버린 전당대회를 놓고 대다수 여론은 또다시 비관 일변도다. ‘싹수가 노란’ 간판 내리고 각자 흩어져 각자도생이나 모색하라는 주문이 줄을 잇는다.

자유한국당이 칼날 위에 서 있다. 한 발만 더 삐끗하면 산산조각이다. 도로친박당, 도로수구꼴통당으로 돌아가 낡은 필름이나 돌릴 시대착오적인 광풍 속에 갇힐 것이라는 낙망이 난무한다. 나라와 당의 ‘미래’를 겨루는 희망의 설계도가 넘쳐나기를 바랐던 많은 이들을 모조리 절망의 섬에 가두고 있다. ‘폐업만이 답’이라는 충고를 반박할 여지란 추호도 없게 만든 보수 야당의 행태에 가슴을 친다. 운명의 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