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조 원이 투자될 SK하이닉스 반도체클러스터 부지가 용인으로 정해졌다. 설마가 진짜가 되고 말았다. 짜고 친 고스톱이란 생각이 든다.

SK하이닉스의 특수 목적회사(SPC)인 (주)용인일반산업단지가 용인시에 투자 의향서를 공식 제출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 과정이 드러났지만 정부는 애초부터 지방은 안중에도 없었던 사안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 주체인 SK하이닉스가 부지를 선정하는 형식을 취하고, 정부는 절차만 거쳐주는 과정을 밟는 순서다. SK 하이닉스 유치로 지방의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목소리는 정부에 조금도 먹혀들지 않았다.

경기도와 용인시 등이 곧바로 SK하이닉스 유치의 환영을 공식 표명하면서 구미시 유치를 요청했던 경북은 이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반도체클러스터 부지 결정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토부 수도권 정비위원회에 산업단지 공급물량 추가공급(특별물량)을 공식 요청하면서 현재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 과거 정부가 국가경쟁력 확보의 불가피성을 내세워 매번 특별물량이란 이름으로 수도권에 공장을 증설했던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2006년 준공된 LG필립스 파주공장, 삼성전자 고덕산업단지, LG 진위산업단지 등이 특별물량으로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피해 온 사례다. SK하이닉스도 똑같은 방법으로 규제가 풀리게 된다면 정부의 수도권 규제 정책은 이제 있으나마나 한 정책일 뿐이다.

수도권 규제나 공장총량제 규제는 수도권에 몰리는 인구와 경제를 막아보자는 취지의 정책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고 지역균형발전으로 온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만들지는 취지의 제도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균형발전 의지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강하다고 자부해 왔다. 대통령이 취임하자 말자 청와대 안에 자치분권비서관과 균형발전비서관 자리를 신설하면서 지역균형발전 의지를 다졌던 정부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약속도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120조 원이 투입될 SK하이닉스공장은 결국 수도권 지역으로 정해졌다. 수도권 규제 등을 정부가 임의로 풀면서까지 용인에 자리를 잡아 준 것이다. 그동안 문 정부가 강력히 주장한 지역균형발전 의지는 이번 결정 과정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수도권 규제를 풀면서 반도체 기업과의 협업, 우수 인재 확보, 기존 SK하이닉스 공장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이유라면 앞으로도 똑같은 논리로 수도권 규제는 얼마든지 풀 수 있을 뿐이다. 수도권과 지방은 이미 빈익빈 부익부의 경지로 들어선지 오래다. 한쪽은 도시의 소멸을 걱정하고 또다른 한쪽은 난개발 문재로 걱정이다. 승자독식의 효과처럼 수도권이 국가경쟁력을 이유를 내세운다면 수도권 규제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문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구호는 헛구호였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