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자유한국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2·27 전당대회가 ‘박근혜’‘탄핵’‘계파갈등’, ‘5·18’ 등 과거 이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태극기부대가 한국당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을 비롯해 두 차례 열린 합동연설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인 일명 ‘태극기 부대’가 수백여 명씩 몰려와 김진태 후보 지지와 함께 집단적인 야유와 고성으로 다른 후보들을 공격하는가 하면 합동연설회장 밖에서 ‘아스팔트 국민 여론은 김진태·김순례’라고 소리높여 외쳐대 기대했던 컨벤션효과마저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당 입장에서 태극기부대를 마냥 비토하지도 못할 처지다. 우선 태극기부대에 대한 국민여론 조차 찬반양론으로 갈린다. 21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국민 10명 중 6명은 자유한국당이 ‘태극기 부대’와 단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20일 전국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태극기 부대에 취해야 할 한국당의 입장’을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단절해야 한다’는 응답이 57.9%로 집계됐다. ‘포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26.1%였고, 모름·무응답은 16.0%로 나타났다. 대구·경북(단절 36.9%·포용 43.8%)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과 연령에서 한국당이 태극기 부대와 단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포용해야 한다는 여론보다 높았다. 정치성향별로는 중도층(단절 65.8%·포용 18.7%)과 무당층(단절 45.2%·포용 16.7%)에서 ‘단절해야 한다’는 응답이 더 많았고, 한국당 지지층(단절 13.5%·포용 64.8%)과 보수층(단절 32.3%·포용 52.7%)에서는 ‘포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태극기부대 포용여부는 탄핵으로 파면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여부를 따지는 ‘배박’ 논란과도 맞닿아있어 간단치 않다. 설령 태극기부대를 포용하려해도 기존 한국당 의원들의 입장이 곤란하다.

탄핵 복당파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아있던 친박·비박의원들 역시 찬반입장을 분명히 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 모양새다. 또 특정 계파의 ‘보스’나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낡은 보스정치로 퇴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부담스럽다.

또 태극기부대가 박 전 대통령 탄핵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정 여부가 전대 TV토론에서도 주요 논쟁 포인트가 되고 있다. 입당 이후 박 전 대통령과 탄핵에 대해선 되도록 언급을 삼갔던 황 후보가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았다는 것이 입증된 바 없다”며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해 적지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탄핵후 구속수감된 박 전 대통령은 비록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상태지만 한국당의 정치지형에 끼치는 영향은 아직도 크다. ‘옥중정치’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국정농단과 탄핵의 책임 소재를 거론할 때마다 당내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간 계파 갈등이 불거질 정도다. 더구나 지난달 15일 입당 후 당 대표 출사표를 던진 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황교안 후보에게 따라붙은 게 ‘탄핵총리’‘배박’(背朴·박근혜를 배신했다) 이란 꼬리표란 점은 이번 전당대회가 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치러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 한국당의 전대에서 2020년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 전략 등 미래 담론은 부각되지 못한 채 ‘문재인 탄핵’과 같은 선동적인 구호만 난무하고 있는 데 대해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 입장에서는 축제가 돼야 할 전당대회의 분위기를 다툼과 분열의 장으로 바꿔놓고 있는 태극기부대가 마냥 원망스러울 법 하다. 그렇다해도 그게 한국당이 뿌린 원죄에서 비롯됐으니 어찌하랴. 사소취대(捨小取大)의 정신으로 작은 이익은 버리고 큰 이익을 취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