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프랑스 도서관과 오세영 시인

사시사철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

서울 한복판 광화문엔 교보문고라는 한국에서 가장 큰 책방이 있다. 하루에 수만 명이 지나다니는 그 서점의 바로 앞엔 아래와 같은 문구를 새긴 커다란 석비(石碑)가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가끔 서울에 가서 그 앞을 지날 때면 이상하게 우울해진다. 이제는 누구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기 힘든 낡은 레토릭(Rhetoric)이기 때문이다. 책과 인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요약한 글귀.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 문구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저 못 본 척 스쳐 지날 뿐. 이는 ‘책의 시대’가 망해버렸음을 실감케 해준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나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소수가 있기 마련이다. 아직도 책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안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 축적된 인류의 문화적 유산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을 종교처럼 믿는 이들이 그렇다.

“21세기 한국인들은 책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에 “그렇지 않다”고 당당히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을까? 아마 드물거나 없을 것이다.
 

나무처럼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
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
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 알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듯.

▲ 프랑스 파리의 도서관에서 떠올린 시(詩)

3년 전쯤 프랑스 파리를 여행했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자 했던’ 청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que Nationale de France)과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를 찾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650여 년 전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민간도서관. 한국 사람들에겐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빼앗긴 ‘외규장각 도서’가 보관된 곳으로 아프게 기억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모든 이들이 가장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을 지향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아닌 수천 년 축적된 프랑스의 문화가 교육과 결합되는 공간이다.

건축 디자이너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건물은 규모와 미려함 모두에서 사람들을 매혹한다. 나무와 쇠, 흙과 유리가 빼어난 교향곡처럼 하모니를 이루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보유한 3천500만 권의 장서(藏書)로도 유명하다.

1977년 개관한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 내부엔 도서관이 있다. 얼핏 보면 투박한 공장처럼 생긴 외관이지만, 그 안에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보물창고’라 할 도서관과 영화관, 갤러리 등을 효율적으로 배치한 것. 철골과 배관이 외부로 노출된 독특한 디자인의 퐁피두 예술문화센터는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 이상으로 미적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파리 시민들은 이곳을 “책, 음악, 미술 등 모든 예술이 함께 숨 쉬는 복합문화공간”이라 자랑하고 있다.

새롭게 출간된 소설과 시집, 미술과 음악 관련 신간들로 가득 채워진 퐁피두도서관은 프랑스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도서관에 입장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수백 미터의 줄을 만드는 풍경이 거의 매일 연출될 정도다.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1846~1870)은 책을 만드는 재료인 ‘나무’를 향해 “스스로는 위대함을 모른다”고 노래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작가들은 책 속에 스며있는 나무의 향기를 어떻게 작품 속에 녹여냈을까? 기자가 떠올린 시인은 오세영(77)이었다.

사시사철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
사시사철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

▲ 책에서 ‘삶의 길’을 찾는 시대는 끝난 것일까

오세영은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추위를 이기며 어울려 살아가는 나무의 선량함을 보며, 인간들 또한 ‘맑은 하늘을 우러러’ 순정하게 살아가자고 권하고 있다.

기꺼이 베어져 사람들에게 필요한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무는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요구하고 있을까?

아마도 ‘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버티며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지.

나무와 책의 가치가 한없이 평가 절하되는 안타까운 시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기자는 책에서 ‘사람이 걸어야 할 마땅한 길’을 찾던 옛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또한 이제는 사라진 한국의 몇몇 서점을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에 문학청년이 지천이던 1970~80년대. 기자 주위에도 책 읽기를 맛있는 요리 먹는 것 이상으로 좋아하던 세칭 ‘문학청년’이 여럿이었다. 매번 새로운 책을 사 읽을 돈이 없었던 그들은 도서관과 헌책방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즐겨 다니던 서점과 도서관에 얽힌 사연이 없을 수 없다.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은 몰려다니던 문예반 친구들이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를 만난 해다. 남부 바닷가 도시의 번화가에 자리 잡았던 H서점에서 용돈을 쪼개 불문학자 김현이 번역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의 시집을 샀다.

아까워 야금야금 읽으며 결심했다. ‘나도 시인이 되겠다’고. 예민한 영혼으로 상처 받은 심장을 안고 문명의 절정 파리를 떠나 아프리카를 향한 랭보의 역마살. 뒤늦게 닥친 사춘기에 어떤 것에도 열망을 느끼지 못했던 열여덟 살 소년은 ‘정주(定住)를 거부하고 떠도는 시인’에게 사로잡혔다.

세계명작동화나 위인전에서 벗어나 단행본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진 것도 그즈음이다. 그랬기에 추억의 공간이었던 H서점이 경영난으로 폐업 위기를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섭섭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내부에 퐁피두 도서관 등이 있는 퐁피두 예술문화센터의 야경.
내부에 퐁피두 도서관 등이 있는 퐁피두 예술문화센터의 야경.

▲ 그리운 ‘문학청년의 시대’

20대 초반 자주 찾았던 D서점도 잊을 수 없다. 카페와 술집이 늘어선 부산 한복판에 돌올하게 존재했던 거기서 ‘루드비히 포이에르 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프랑스 혁명사 3부작’ ‘문학과 변증법’ 등을 구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칼 마르크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폼’이 나던 시대였다.

그 시절 혁명을 꿈꾸던 청년들은 세상을 낙관했다. 그 낙관은 독서의 힘에서 온 게 분명했다. 그랬는데…. D서점 역시 경영난으로 2010년 문을 닫았다고 한다.

동네마다 조그만 책방 하나 정도는 있던 1980년대는 이미 오래 전 기억이다. 헌책방에 서서 몇 시간이고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책을 읽던 학생들은 사라졌다. 이제 몇몇 대형 서점만이 겨우 살아남아 ‘한국에도 서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오늘.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부끄러움이 될 수 없는 시대가 서글프다.

“세상 가장 좋은 향기는 오래된 책 냄새”라고 말하던 한 스승의 말이 떠오르고, 가난했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았던 그 옛날 문학청년의 시대가 그리워진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조용한 파리의 도서관에서 몇 달쯤 책만 읽으며 살아보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이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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