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 한동대 교수
김학주
한동대 교수

투자자 가운데 가치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화려한 성장 이야기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가치가 있다는 것은 투자 대상에 하자가 있지만 가격이 너무 하락하여 싸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하락한 가격이 매수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수준까지 내려왔는지 일반 투자자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성장 스토리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세계경제는 저성장이 확연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치주 펀드의 수익률이 성장주 펀드보다 저조하다. 그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해 보자.

첫째, ‘가치’에 대한 정의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싸다고 무조건 가치주가 아니다. 단지 싸 보이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기업은 과거의 잣대로 보면 싸 보이나 주가는 계속 흘러 내리게 되어 있다. 워렌버펫이나 그의 스승 벤자민 그레이엄이 가치주를 고를 때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부분을 보기에 앞서 투자대상이 속한 산업이 진입장벽이 높아 경쟁강도가 낮은지, 또는 수요가 안정적인지를 관찰한다. 이것이 하락한 주가를 다시 정상궤도로 돌려줄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고, 가치주의 위력은 여기서 나온다.

둘째, 지금은 산업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맞춤형 서비스로 넘어가고 있다. 뜨는 해와 지는 해가 확실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신성장 산업이 저성장 환경 가운데 더 빛나 보일 수 밖에 없고, 또 전체적으로 그 비중이 작아 희소성마저 있다.

작년 말 증시가 조정을 받은 이후 쏠림이 심했던 기술주가 무너지고, 그 반사이익을 가치주가 받으며 상대적인 성과가 좋았다. 이런 경우가 가치주가 힘을 발휘하는 유일한 구간이라고 생각한다. 즉 시중의 자금이 미래의 희망을 보며 쏠리는 기간은 길게 진행되는데 이 시기에는 성장주가 득세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기술주가 규제의 장벽에 막혀 희망에 손상이 가는 등 쏠림이 무너지면 주가는 짧은 기간 폭락하게 되는데 이 때가 가치주가 득세하는 시기다. 결국 가치주는 과거의 성장과 새로운 성장 사이에 일시적인 피난처로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이 그런 시기다.

그렇다면 언제 새로운 쏠림이 나타나서 증시를 다시 끌어 올릴까? 그 동안 증시를 좌절시켰던 주요인이 규제였으므로 그 해결책도 정치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즉 정보의 국가간 이동, 환경, 그리고 개인정보 사용에 관한 규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치적 사건은 내년 미국 대선이다. 여기서 민주당이 이길 경우 규제가 풀리고 새로운 희망을 던져 줄 수 있다. 무역갈등의 수위도 낮아질 수 있다. 즉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패권이동이 질서 있게 진행되어 시장에 혼란을 덜 줄 수 있다.

그 때까지는 가치주가 득세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증시가 다시 한번 주저앉을 수도 있다. 최근 재미있는 현상은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보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가 상승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이 너그럽게 자금을 풀겠다고 선언했음에도 그 돈이 신흥시장을 비롯한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만큼 미국 이외의 지역이 불안해서 미국에 숨어있겠다는 것이다.

최근 독일이 경기침체에 가까워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독일은 유럽의 핵심국가다. 미국 이기주의의 결정판은 자동차 수입관세인데 이것이 구체화됐을 때 독일은 결정타를 맞을 수 있다. 일본도 휘청거릴 것이다. 달러의 경쟁국 통화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최근 원화에 대한 달러의 강세도 미국 이기주의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세계경제 시스템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내년 미국 대선 이후 갈등보다는 화해, 그리고 규제완화 분위기가 도래하며 새로운 성장과 쏠림을 만들어 주기를 기다린다. 그 때까지 가치주가 회복하며 과도기를 메워주기를 바라지만 증시가 무너졌다가 새로운 질서를 찾으며 회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