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시간을 얼려버릴 추위에도 자연은 결코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철을 아는 자연은 천천히 겨울 솜이불을 걷어내고 있다. 때론 겨울이 마지막 투정을 부리지만, 바뀌는 바람에 겨울도 수긍한다. 바뀐 바람을 타고 눈이 꽃 소식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바람이 가지에 묻은 겨울을 털어내면 자연은 꽃눈을 힘껏 밀어 올린다. 그렇게 밀어 올린 봄은 작년 봄과는 다른 봄이다.

사람들이 자연에 감탄하는 이유는 바로 새로움 때문이다. 자연에는 구태(舊態)가 없다. 자연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낸다. 자연이라고 왜 미련이 없을까마는 새로움을 짓는 방법을 아는 자연은 미련을 모른다. 춥다고, 가물다고 절대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그 어떤 탓도 하지 않고 자연은 자신과 주변을 살핀다. 이것이 자연이 겨울을 임하는 자세이다.

겨울은 자연에게 준비의 시간이오, 기다림의 시간이며, 또 철저한 자기반성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들이 있기에 자연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자연의 힘은 때를 아는 것이다. 자연에게 있어 2월은 출발의 달이다. 새 출발을 시작하는 자연의 이야기를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상략)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기어코 /봄은 찾아온다는 것//슬픔과 고통 너머/기쁨과 환희로 가는 길은//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음을/가만가만 깨우쳐 준다//이 세상의/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나를 딛고/새 희망 새 삶으로 나아가라 (하략)” (정연복 「2월」)

자연은 슬픔과 고통을 기꺼이 감내(堪耐)하고 기쁨과 환희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은 꽃들이 만개한 꽃길이다. 인간들은 행복하게 서로 손잡고 그 꽃길을 가면 된다. 자연은 인간들에게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 길에서 모두가 행복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발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닫아버렸다. 비록 해는 바뀌었지만, 어찌해서 이 사회는 바뀐 게 하나도 없을까?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앵무새 유전자라도 이식받았는지 정말 변한 게 단 하나도 없다. 어쩌면 이 나라에는, 특히 정치와 교육에는 새로움과 희망이라는 단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더 힘들기만 하다. 마치 올무에 걸린 모습과 같다. 발버둥 칠수록 더 옥죄는, 그래서 결국엔 고통스럽게 생을 마치고 마는 올무에 걸린 삶! 과거라는 올무에 걸린 이 나라의 운명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구 절벽, 경제 절망, 교육 붕괴, 정치 불신…! 이대로 가다간 남는 건 결국 국가 부도밖에 없다.

이 나라의 미래가 부도로 끝나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를 털어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 이익을 위해서 과거의 특정 부분만 그대로 복사(ctl+c)해서 붙여넣기(ctl+v)를 해서는 안 된다. 과거청산이 어려우면 과거를 용서하자! 민족상잔의 주범도 이해를 하고 대화를 위해 간과 쓸개를 내놓는데, 왜 우리끼리는 서로의 올무가 되는가!

이 나라에 진정 봄이 오기 위해서는 교육부터 봄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데 곧 교육의 봄인 3월이지만, 신학기에 대한 설렘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나라 교육방향의 핵심 키워드 또한 ‘과거 복사’, ‘붙여넣기’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창조, 변화를 외치지, 교육현장에서는 글자 하나 틀려도 생난리를 치는 게 이 나라 교육 현실이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이가 말한다. “아빠, 내 친구 벌써 수포자(수학 포기 자)다. 근데 학원에서는 중학교 2학년 끝났대. 엄마가 초등학교 때 중학교 수학 다 끝내라고 했대. 내 친구 정말 불쌍해!” 이 나라 교육의 봄은 언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