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곤영대구취재본부장
이곤영
대구본부장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말을 조심해서 하라는 뜻이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으며, 그 말이 잘못 전달돼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지역을 방문해 동남권신공항의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며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대구와 경북, 부산, 경남, 울산 등 5개 시도가 10년이 넘는 갈등 끝에 합의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난 동남권신공항이 자칫 백지화되고 또다시 영남권이 분열될 위기에 빠지게 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동남권신공항과 관련해 “부산·울산·경남의 타당성 검증 결과를 놓고 5개 광역자치단체의 뜻이 하나로 모아지면 결정이 수월해질 것이고, 만약 생각이 다르면 총리실에서 검증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논의하느라 사업이 표류하거나 지나치게 늦어져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2016년 6월 최종 결정된 김해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고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문 대통령의 재검증 발언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부산은 김해신공항 확장 결정을 재검토하라는 뜻으로 기정사실화하고 그동안 주장해온 가덕도신공항 건설 재추진에 더욱 힘을 모으고 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된 대구·경북은 “이미 동남권 신공항은 5개 시도가 합의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난 국가정책을 왜 대통령이 뒤집느냐. 이미 결정나 추진되고 있는 일로 재론할 사안이 아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도가 떨어지는 부산·경남지역을 배려하려는 속내가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당장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즉각 공동입장문을 발표하며 반발했다. 양 시·도지사는 14일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김해공항 확장과 대구공항 통합이전으로 이미 결정나 추진되고 있는 일로 재론할 사안이 아니다며 문 대통령의 동남권신공항 재검토 발언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동남권신공항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6년 12월 공식 검토를 지시한 후 10여년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때마다 ‘뜨거운 감자’였다. 경제성 부족으로 무산됐다가 박근혜 정부 때 우여곡절을 겪으며 5개 지자체 합의끝에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안으로 결론이 났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이 나서서 김해신공항을 재검증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다. 국책사업으로 결정 후에도 부울경에서 김해공항 확장을 반대하는 분위기속에 문 대통의 발언은 더 큰 갈등의 불씨를 만드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올 상반기 김해신공항 건설을 위한 기본계획안을 확정·고시하고 하반기 설계에 들어가 2021년 착공하고 2026년 완공해 개항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국토부의 김해신공항 사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당장 동남권 신공항사업 자체가 상당 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총리가 결정권한의 주체로 승격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총리가 정무적 판단으로 김해신공항 사업을 철회하면 동남권신공항 사업은 입지 사전 타당성부터 예비타당성 조사와 후보지 선정 등 모든 절차를 새로 거쳐야 하는 등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10년 갈등을 넘어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낸 사업을 무시하고 또다시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결론을 내고 추진하고 있는 국책 사업이 정치 논리에 휘둘려 오락가락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 정부는 하루빨리 입장을 정리해 불필요한 논란을 조속히 매듭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