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수 경

아직 해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만

이곳으로 올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삼 초 간격으로 달라지는 하늘빛을 보세요

마치 적군의 진격을 목전에 둔 마을

여인들의 공포 같은

빛의 움직임

해가 정격 포즈로 하늘을 완전 점령하고 나면

이 발굴지를 덥석 집어 제 식민지를 건설합니다

사탕수수도 목화도 자라지 않는 이 폐허

해는 이곳에 아찔한 정적을 경작하고

햇빛은 자유 데모보다 더 강렬하게

폐허의 심장을 움켜쥐지요

고고학 발굴 현장의 새벽을 묘사하고 있는 이 시에서 햇빛은 여인들을 공포에 떨게하는 적군 같이 공격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며 부정적 의미로 읽혀지는 것이 통상의 시에서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햇빛은 폐허의 현장을 비추는게 아니라 해가 비쳐서 폐허로 바뀐다는 것으로 보아 해는 죽음의 이미지로 쓰이고 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