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딩고.

서라벌대 산학협력단장으로 일할 때 우리나라 교육부에 해당하는 호주의 교육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호주 교육청 앤드류 국장은 업무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호주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주에는 원주민을 기리는 의식이 있는데, 현재 호주인들은 원주민이 살던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 원주민에게 저질렀던 인종 차별에 유감을 표하는 국가적 행사를 매년하고 있는 것이다. 1788년 1월 26일 아서 필립 총독이 시드니 커브에 깃발을 꽂고 영국의 통치권을 선언하게 되는데 이날은 ‘호주의 날’로 기념되고 있지만 원주민들에게 이날은 ‘침략의 날’로 여겨진다.

1788년에 양(sheep)과 다른 가축들, 그리고 물품을 실은 최초의 함대가 호주 남쪽 땅에 식민지에서 필요한 짐을 하역했을 때, 이 신흥국가의 경제가 양모산업 위에 세워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호주의 양 목축업계 초기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랫동안 호주의 야생개로서 잘 알려져 있는 딩고(dingo)였다. 순종 딩고는 키가 60㎝ 정도에 체중이 대략 15㎏인데, 호주 본토의 가장 큰 육식동물이며, 하룻밤에 먹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50마리의 양을 물어 죽일 수 있었다. 결국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더 긴, 세계에서 가장 긴(5천321㎞)차단용 울타리가 양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호주 남동부 전체에 건설되었고, 개 울타리 남(안)쪽에서 딩고는 해로운 동물로 선포되어졌다. 딩고 머리가죽 하나 당 미화 380달러까지 현상금이 올라가기도 했는데, 울타리 북쪽에서의 딩고는 합법적인 야생 동물로서 간주되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자고 있는 딩고.
자고 있는 딩고.

유럽에서 첫 이주자들이 호주에 도착했을 때에 야생의 딩고들 다수는 진정한 야생이 아니라, 인간 보호자와 함께 살고, 먹고, 사냥을 하였다. 호주 원주민들에게 ‘워리걸(warrigal)’로 불리는 딩고는 가축으로서 매우 중요하였다. 딩고는 잠자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고, 캠프를 깨끗게 했으며, 사냥을 돕고, 경계를 서주었다. 딩고는 원주민들의 암각화에서, 호주 원주민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등장한다. 또한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오리온좌의 두 마리 딩고에게 쫓기는 캥거루의 무리로서 묘사되고 있다.

초기 이주자들이 혹심한 호주 기후에 더 잘 적응하는 품종을 얻기 위해 자기들이 데리고 온 목축개와 딩고를 열심히 교배시킨 것을 보면, 딩고는 분명히 개에 속한다. 호주의 목축개인 일명 퀸즈랜드 힐러와 호주 캘피는 딩고와의 잡종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호주 들개인 딩고는 집에서 기르던 개가 야생화된 것인가, 아니면 늑대와 같은 야생동물이 길들여진 것인가? 딩고가 아시아의 일부 가축용 개들과 매우 닮았고, 원주민들과 같이 살았으며, 또한 인간을 제외하고는 호주대륙에서 유일한 큰 태반포유류임을 근거로, 딩고의 선조는 집개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나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 학명도 통일되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딩고는 집개의 아종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1982년에, 일부 분류학자들은 딩고를 늑대의 아종으로 분류할 것을 추천했다. 다른 이들은 딩고를 독립 종으로 불렀다.

이동훈
이동훈

최근 유전학은 그 논쟁을 종식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전학에 기초한 연구에 의하면, 딩고는 동남아시아로부터 호주에 들어온 단지 소수의 집개의 후손이 결국 야성화되었다는 믿을만한 증거들이 나타났다. 유전공학적 연구들은 ‘한 마리의 임신한 암컷’이 호주대륙에 건강한 딩고를 퍼뜨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주 본토 자체가 아시아에서 분리되자, 사람들은 보트, 뗏목, 또는 카누로 이동하는 상황이 되었고 딩고는 그 때에 최초 이주자, 또는 이후의 이주자들이 데리고 오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호주 북부지역의 라라키아부족의 전설에 의하면, 카누로 도착하고 있는 그들의 조상들이 개를 동반하고 왔음을 말하고 있다.

호주 캥거루에 기생하는 이(lice)가 인도네시아의 개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단서로 사람의 이동과 대륙의 이동, 캥거루의 이동과 멸종에 대한 다양한 탐색까지 진행되는 연구들이 흥미롭다.

/서라벌대 반려동물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