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위안부·강제징용·초계기에 이어 ‘일왕 사죄’요구 논란까지 겹겹이 이슈가 쌓이면서 평행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외교적 갈등과는 별개로 경제 분야를 비롯한 양국 간의 교류에는 아직 큰 변동이 없다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심각한 국면으로 확산할 여지가 있는 시한폭탄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해법의 매듭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양국 정치권의 악용 여지부터 없애는 것이 급선무다.

지난 8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블룸버그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의 본질은 진정성 있는 사죄”라면서 “‘전범’의 아들인 현 아키히토 일왕이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일본을 한껏 자극했다. 그런데 일본이 최근 ‘이미 사과했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에 사과를 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근거로 드는 가장 대표적인 문건은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 담화문이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라고 밝혔었다.

‘지한파’로 꼽히는 미치가미 히사시 주(駐)부산 일본 총영사는 2016년 7월 국내에서 출간한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중앙북스)에서 일본 역대 총리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국 총리로서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을 표합니다’라는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위안부 역사에 대해서 ‘많은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성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 썼다고도 했다.

한일갈등 양상을 요약하면 일본은 이미 ‘사과했다’는 입장이고, 우리는 ‘진정성이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진정성’이 문제가 되는 만큼 풀어내지 못할 이유가 없을 듯도 하다. 우리에게 일본은 전 분야에 있어서 영향을 주고받는 이웃으로서 작금의 첨예한 갈등은 서둘러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 정치권이 갈등을 악용해 수구적 민심을 자극하여 권력을 유지하려는 얄팍한 속셈부터 버려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죄’요구가 잠시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은 될지언정 미래지향적인 혜안인지는 의심스럽다. 기왕에 문 의장이 나선만큼, 쏙 빠지지 말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묘안까지 생산해내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