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란 뭔가 모자라는 구석이 있어 정상적 생활이나 판단을 못할 것 같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바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가 사용하기에 따라 느낌이 다를 때가 더러 있다. 바보보다는 천진난만함을 표현하고 우직스러운 이미지를 줄 때도 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은 우직함을 표현한다. 어리석은 것 같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바보처럼 한우물만 파서 큰 성과를 낼 때 이런 말을 쓴다.

대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김수환 추기경의 별명이 바보다. 2007년 그는 모교였던 동성중고교 100주년 기념전에 그가 직접 그린 자화상을 출품했다. 크레파스로 아주 간결하게 스케치한 자화상 아래에는 “바보야” 라고 직접 쓴 글을 남겼다. 당연히 화제가 됐다. 이 그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때부터 그에게는 바보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녔다.

그의 선종 10주기 추모행사가 지난 주말 전국에서 추모 미사와 함께 열렸다.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이자 성직자로서는 드물게 종교를 넘어 많은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10주기 행사는 사회적 반향도 적지 않았다. 특히 우리지역과의 깊은 인연으로 이곳에서의 그에 대한 추모 열기는 남달랐다.

그는 1922년 대구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기 시절은 군위군 용대리에서 부모님과 함께 보냈다. 1951년 사제 서품 후 안동천주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1956년 독일로 유학 가기 직전까지 대구 경북에서 사목 활동을 했다. 그가 선종하며 남긴 자신의 각막도 안동의 한 노인에게 기증됐다.

그는 스스로를 바보라 낮추었으나 오히려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일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로하는 삶을 살았으며 민주화, 인권,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늘 앞장섰다.

2009년 그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 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선종하던 날 명동성당에는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의 각막 기증 소식에 사후 장기기증자가 갑자기 줄을 섰다고 하니 일종의 신드롬을 느끼게 한 일이었다. 그의 사랑과 나눔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 주말이었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