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엔나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기차에 탑니다. 깨끗하고 푹신한 의자 대신 지푸라기가 깔려 있고 오줌 냄새와 파리 떼가 들끓는 화물칸입니다. 숨쉬기도 곤란할 만큼 사람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떨굽니다. 기차에 탄 1500명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들이지요.

1942년. 남자는 동료 유대인 6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나치의 조직적이고 능률적인 살인 공장의 세계에 끌려갑니다. 1500명 중 1300명이 하루 밤 만에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비교적 건강하고 노동력이 있어 보이는 200명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요. 남자는 극적으로 삶의 대열에 몸을 옮깁니다.

남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첫 책으로 펴내기 직전 끌려왔습니다. 품 안에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원고 뭉치가 있습니다. 나치는 가차없이 생명처럼 품고 온 원고를 빼앗아 불타는 소각장에 던져버립니다. 형편없는 강제 샤워를 마친 후 주어진 낡은 옷 한 벌. 그 허름한 옷의 비밀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 하나를 발견합니다. “네 혼과 힘과 마음을 다해 야훼를 사랑하라.” 유대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며 늘 애송하는 쉐마 이스라엘(Shema Israel)의 유명한 귀절을 만난 남자는 눈물이 핑 돕니다. 원고 뭉치와 메모 한 장을 맞바꾸었다 생각하며 삶의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수용소 생활에 최선을 다합니다. 하루 배급받는 물 한 컵을 반은 마시고 반은 아꼈다가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위해 세수하고 면도하는데 사용하지요.

남자의 이름은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e). 세계 100대 유명인사들이 가장 영향받은 책 1위로 선정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바로 그분입니다. 사람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자신의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 주도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로 빅터 프랭클은 규정합니다. 사회적 날씨 따위가 결코 우리의 존엄을 짓밟을 수 없고 삶을 휘두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언제 어떻게 가스실로 끌려갈 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빅터 프랭클은 세상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진정한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요.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삶입니다.

사회적 날씨에 휘둘리지 않는 주도적인 삶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오늘도 묵묵히 삶의 현장에서 어떤 환경에도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그대의 용기에 박수를 드립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