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충선공 범순인(范純仁)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탓하는 데에는 명석하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흐리멍덩한 법이다. 너희가 다만 항상 남을 탓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탓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라는 교훈이다.

조선후기 성리학자 기정진(1798~1879) 선생의 ‘노사집(蘆沙集), 답안윤극(答安允克)’에 ‘성인의 도는 자기를 탓할지언정 남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 기록은 안윤극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서두에 적은 내용으로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살피고 돌아볼 수 있어야 이른바 전인(全人)의 ‘도’를 실천할 수 있다고 언급했던 것이다. 옛날 임금들 역시 흉년으로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면 수라상 반찬의 가짓수를 줄여가며 스스로 근신했다.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임에도 임금의 부덕으로 인해서 발생한 소치로 돌리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근심하고 반성했던 것이다.

나를 지칭하는 뜻을 가진 한자는 ‘아(我)’와 ‘오(吾)’가 있다. 아는 손(手)에 창(戈)을 들고 있는 형상으로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 과시하고 싶어 하는 뜻인 반면, 오는 남에게 나타내지 않는 진실한 자신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솔직한 나보다 드러내 과시하며 허세를 부리는 나를 더 알아준다. 사회가 이런 풍조로 흐르다보니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솔직한 나보다는 드러내 과시하는 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낼수록 솔직한 나로부터는 멀어지고 가식 덩어리로 변해 불행하게도 진짜 나를 잊고 거짓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는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소가 있는 고령재사(高嶺齋舍)를 육오(六吾)로 명명하고 팔순의 나이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평생 동안 마음을 지킨 것이 하나는 자긍심을 경계함이며, 하나는 자만을 경계함이다. 또 하나는 지위를 잊는 마음이며, 하나는 물로 씻어서 깨끗이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만일 나의 마음을 알려면 고령 육오당(六吾堂)을 보아라’ 영조가 왕이라는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과시하는 나를 버리고 진실한 나를 찾으려 했던 것은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오천(吾天)에 초점을 두어 나의 본분을 안다면 물질적 풍요를 함부로 구하지 않고 분수에 맡길 수 있으며 사회적 성공을 기필하지 않고 주어지는 기회에 순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조작을 벌인 혐의를 받던 경남지사에게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어 법정구속되었다. 이 상황을 놓고 집권 민주당은 경남지사를 구속시킨 판사에 대해 떼를 지어 인신공격에 가까운 공격을 하고 있다. 객관적 물증과 소신을 가지고 내린 이 결과가 과연 적폐판사의 보복성 판결에서 나온 것일까에 대한 해답은 해당 판사의 과거 판결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년 전 성창호 판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을 구속시킨 후, 불과 여섯 달 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을 놓고 당시 민주당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인과응보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박수를 쳤다. 그러던 당이 경남지사의 유죄선고 뒤엔 곧바로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를 꾸리고 탄핵까지 추진하겠다고 야단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모두 적폐로 몰아부치는 이런 경우는 적폐(積弊)가 아니라 적폐(敵廢)라 해야 옳다. 여야 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땐 박수치고 그렇지 않을 땐 무차별적 비판과 모독적인 발언을 거리낌 없이 일삼는 정치집단의 이런 작태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삼권분립을 유린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 혈세로 호의호식하며 나라 망치는 최악의 적폐집단으로 보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