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

그 거리를 떠올리면 따그닥 따그닥 말발굽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수레에 시멘트 포대를 싣고 천천히 이동하는 말들의 행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화물차로 포항역에 도착한 시멘트 포대를 동빈내항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으로 옮겨 싣는 마차(馬車)들이었다. 마차들의 행진이 지나고 나면 남빈동 거리 곳곳에는 말똥이 덕지덕지 놓여 있었다.

동빈내항에는 벌거숭이 꼬마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수영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건너편 송도까지 건너가 채마밭에서 서리를 하기도 했다. 남빈동 부둣가와 송도를 오가는 나룻배도 있었다. 송도해수욕장은 꼬마들이 달리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명사십리가 펼쳐져 있었다. 1970년대 중후반, 그 목가적인 풍경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당시도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그 이전은 어떠했을까? 지역 원로 박이득 선생은 “산업화 이전의 포항은 요즘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도시재생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도시도 흥망성쇠의 기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산업화라는 강력한 동력으로 가파르게 성장한 도시들은 산업화가 한계에 이르자 급격하게 쇠퇴했고, 그 과정에서 숱한 문제를 안게 됐다.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화가 가장 먼저 진행된 영국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일찍 시작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도시재생 뉴딜’의 일환으로 포항에서도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앙동, 신흥동, 송도구항이 포함됐는데, 송도구항 일원이 규모나 파급력 면에서 가장 크다. 포항시는 ‘ICT 기반 해양산업 플랫폼, 포항’을 주제로 △첨단 해양레포츠 융·복합 플랫폼 조성 △해양MICE 산업지구 조성 △기상방재 ICT 융·복합지구 조성 △복합문화·예술·관광 특화지구 조성 △스마트 생활환경 개선사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럽도 항구도시에서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산업과 교역의 중심인 항구에서 개발이 먼저 이뤄졌고, 쇠퇴로 인한 후유증도 컸기 때문이다. 영국 리버풀, 독일 함부르크, 프랑스 마르세유, 스페인 빌바오, 스웨덴 말뫼·예테보리가 대표적인 성공사례이고, 일본 요코하마도 이 목록에 넣을 수 있다. 이 도시들의 재생사업은 포항으로서는 유용한 참고 사례가 되며, 특히 스페인 빌바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 빌바오 하면 구겐하임미술관을 떠올린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던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빌바오의 랜드마크가 분명하다. 하지만 도시재생 분야의 권위자인 김정후 박사는 페이스북에서 “빌바오 도시재생의 핵심은 미술관이 아니고, 장기적 정책을 수립해 쇠퇴한 네르비온강 주변 수변공간의 ‘공공성’을 회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빌바오의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도심을 관통하는 네르비온강이 죽음의 강으로 전락했고, 1984년부터 2006년까지 오염된 강을 정화하고 상하수도관을 교체하는 공사에 10억 파운드가 소요됐다는 사실이다. (김정후, ‘빌바오,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교본’, ‘THE OCEAN 2호’, KMI, 2015)

송도구항 일대의 수질도 포항시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도시재생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참에 도시재생의 핵심은 ‘공공성 회복’이며, 수변공간의 경우 수질 개선이라는 기본을 되새겼으면 한다. 2018년 7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 바라보이는 라 살베 다리 위 27미터 높이에서 세계절벽다이빙대회가 열렸다. 구겐하임미술관을 배경으로 다이버가 몸을 던지는 장면은 환상적이다. 송도구항 일대에서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수영대회를 상상해본다. 과거 포항사람들은 하늘빛 닮은 이 강에서 수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체력도 다졌다. 아름다웠던 그 풍경을 미래지향적으로 복원하는 날, 포항은 매력적인 수변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