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오는 27일 전당대회를 앞둔 자유한국당이 오리무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한국당 전대는 애초부터 친박(친박근혜계)이냐, 비박(비박근혜계)이냐의 논란을 중심으로 ‘계파 갈등’이라는 고질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영입으로 인해 대안(代案)에 목말라 있던 일부 지지자들의 쏠림현상이 감지되면서 다른 주자들의 경계심이 날카롭다. 정치 권력 쟁패에 나타나는 변수는 워낙 변화무쌍해서 예측도 대응도 늘 난제다. 황교안의 등장에 기대는 사람들의 심리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그 바탕을 이룬다. 한국의 민심은 늘 이런저런 경력이 덕지덕지 붙은 기성 정치인보다는 뭔가 있을 것 같은 ‘거물 신인’을 선호한다. 그런 국민성향을 잘 꿰고 있는 정치권은 마땅한 인재만 있으면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그렇게 정치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가 만신창이가 된 인재가 어디 한둘이던가. 한국 정치는 여전히 명망가들의 고약한 무덤이다. 하필이면 제2차 북미회담이 2월 27일로 결정이 나서 한국당이 비상이 걸렸다. 일부에서 음모설까지 나왔으나 무리한 상정(想定)이다. 암중모색에 빠진 전대 출마 후보들을 중심으로 전대 연기론이 불거졌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선거대책위원회는 전대 일정을 바꾸지 않기로 정했다. 다들 어쨌든 난감한 지경에 빠졌다.

그런데 설 명절이 지나자마자 자유한국당 안에서 골치 아픈 ‘자살폭탄’ 하나가 터졌다. 김진태·이종명(비례대표) 의원이 극우 논객 지만원 씨를 초청해 이른바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연 것이다. 지만원 씨는 이날도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는 종래의 주장을 거듭했고, “당시 광주 상황을 북한에서 전부 생중계했다”는 말까지 보탰다.

공청회에서 김진태, 이종명 그리고 김순례(비례대표) 의원 등은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표현했다. 김성찬·백승주·이완영 의원 등 한국당 주요 인사들도 함께한 자리였다. 이 땅에는 5·18에 대한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시각이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자체가 온전한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돼야 한다. 수백 수천 년이 흘러도 논쟁이 남는 게 역사의 특성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 시점에 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예상대로 정치권이 시끌시끌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이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5·18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된 사건”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이런 해프닝이 남기는 이미지 손상의 크기는 가늠조차 어렵다. 결과적으로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콩가루 조직임이 입증됐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합리적인 회의(懷疑)는 지성인의 의무다. 그럼에도 그것이 정치 행위로 나타날 때는 얘기가 다르다. 문재인 정권의 거듭된 실정(失政)과 부조리가 민심을 흔들고 있는 이 시점에 제1야당은 ‘선택과 집중’으로 이슈 몰이를 해야 할 시점이다. 구성원들의 무차별적 전선확대는 정치 초짜들도 안 하는 한심한 ‘뻘짓’이다. 자유한국당은 정말 수구꼴통 주홍글씨의 변함없는 포로인가. 지금 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설 명절 민심을 들어봤다. 집권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이 많이 늘었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더라는 말이 무성하다. 그러나 아무도 대안을 말하지는 못했다. ‘자유한국당’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딱히 누군가를 떠올리는 자신만만한 민심도 찾기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은 ‘대안’도 없는 ‘절망’의 늪에서 ‘비극’을 더 오랫동안 견뎌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