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br>​​​​​​​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선현(先賢)들은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나 명심하면서 살아야 할 금언(金言)이지만, 특히 정치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손혜원 의원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의 행동이 위법인가의 여부는 검찰에 고발되었으니 수사를 통하여 법원의 판단으로 가려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자의 행동이 ‘법적 정당성’은 물론이고 ‘도덕적 정당성’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권력자의 행위가 위법은 아니었지만 매우 비윤리적인 것이었다면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법원의 무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미 도덕적으로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목포의 문화재 사랑에 대한 손 의원의 선의(善意) 여부는 본인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가 없다. 또한 정치인의 행위가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정치쿠테타의 장본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국민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그 선의를 역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 행위가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손 의원의 선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특권과 영향력을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올바른 처신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손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로서 문체부와 문화재청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남편 재단의 작품을 피감기관에 판매하였고, 그 재단의 이사를 문화재위원으로 추천하였으며, 국립박물관의 인사에도 압력을 행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

나아가 그가 목포 구도심에 가족·인척·지인의 명의로 사들인 20여 채의 부동산은 이 지역이 근대문화유산 공간으로 지정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었다. 국회 문체위 간사라는 ‘공적 권한’과 본인을 비롯한 친인척의 ‘사적 이익’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혹은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손 의원이 주장하는 ‘문화재 사랑’의 진정성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그의 문화재 사랑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 모든 일들을 ‘사적·비공개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공적·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했었다. 권력자의 진정성은 ‘그가 하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노엄 촘스키는 ‘책임의 윤리’를 논하면서 “책임은 특권에 정비례한다.”고 하였다. 특권이 많은 정치인일수록 그만큼 책임도 무거운 것이다. 모든 권력자는 자신의 특권을 사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져야하며, 그 책임에는 법적 책임은 물론이고 도덕적 책임도 따른다. 만약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정치인이 나라의 정신문화 육성을 말한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목포 부동산 구입을 계기로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손 의원과 친동생 간의 진실공방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를 떠나서 왜 우리는 이런 정치인들의 모습을 자주 보아야 하는가? 한 때 도지사 동생은 ‘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더니 이제는 국회의원 누나가 “동생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한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것은 정치인의 개인적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모든 국민들의 불행이기도 하다. 개인적 불행도 슬픈 일인데 굳이 국민적 불행으로까지 확산시켜야 속이 시원한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내로남불’을 주장하는 데는 뛰어난 언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가진 자로서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우리는 언제쯤 품격 있는 정치인들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