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곽재구 지음·문학동네 펴냄
시집·1만원

곽재구 시인. /문학동네 제공
곽재구 시인. /문학동네 제공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가 여덟번째 시집‘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문학동네)를 펴냈다.

1981년 등단해 올해로 39년차 시인으로 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서민들의 애환과 아픔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낸 시 ‘사평역에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7년 만에 펴낸 이 시집은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은 미발표시 73편을 묶었다. 특히 해설 대신 시인이 직접 우리말의 자모로 써내려간 산문을 실어 특별함을 더했다.

처음 시를 만났던 유년의 기억과 더불어 매일 열 편의 시를 쓰겠다고 결심했던 스무 살 적 시쓰기 십계명을 되새기며 김소월, 윤동주, 정지용을 차례로 호명하는 시인의 산문은 ‘별 헤는 밤’과 ‘향수’를 필사하던 그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시어로 들어앉은 우리말들의 예쁨을 발음하며 몸으로 새겨 읽기 좋은 이번 시집은 유유히 차분히 느릿한 여유를 삶 가운데서 찾고픈 이들에게 어린이처럼 투명해진 시심(詩心)으로 안내하는 교과서라 하겠다.

우리 땅에 지천으로 흩어진 풀꽃 같은 헐벗고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온몸으로 껴안으며 ‘삶에 대한 끈끈한 진실’을 노래해온 시인 곽재구. 고통스러운 풍경을 묘사할 때에도 맑고 순수한 서정성으로,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끝내 와야만 하는 희망의 세상을 지금 여기에 불러냈던 그. 아물지 못할 우리의 상채기들을 수선해내는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 모두는 인간의 따뜻함을 조금씩은 더 희망하게 됐으리라. 그렇게 절망보다는 희망을, 고통보다는 사랑을 노래하기 위해 힘써온 곽재구가 일별해낸 민중의 풍경은 80년대를 버텨줄 한줄기 서정성이 돼줬다. 강언덕에 누워 마을 하나하나의 꿈과 사랑과 추억의 깊이를 만나고 그것을 시의 밑그림으로 삼았던 곽재구. 아주 오래전부터 한 강을 사랑해왔다고, 그 강의 이름은 내게 늘 처음이었으며 열망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 그에게 고요하게 흘러가는 강물소리는 삶이 흘러가는 흔적이자 이 땅의 모든 서럽고 쓸쓸한, 가슴 먹먹한 목소리였다. 그가 삶의 밑바닥에서 퍼올린 마르지 않는 사랑은 순천(順天)의 샛강 동천을 타고 흘러 “이야기의 바다”로 가는 마법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시의 본질은 대화이며 이야기하는 거라고,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말 못하고 이름 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시인은 증명해 보인다. 내 안의 침묵에 머무는 시인의 귀에는 세상의 모든 목마른 소리들이 들린다(‘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허리를 내어주고,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대신 평생을 강물의 노래만을 들으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선 징검돌. 깊은 겨울, 눈을 막아주고 추운 바람을 맞아주는 나무의자(‘징검다리’)의 침묵은 시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 시인의 시 속에서 말 못한다 여겨지던 사물과 풍경은 제 목소리를 얻고, 징검돌은 미르가 돼 날아오른다. 이름 없던 돌과 풀에게 시인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이름과 관계를 선물한다.

곽재구 시인. /문학동네 제공
곽재구 시인. /문학동네 제공

시인은“아픈 사람은 더 아프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이 세상에서“가난한 사람이 따뜻해지는 시”를 쓰겠다고 다짐한다(‘라면 먹는 밤―성래에게’). 가진 것 없는 우리가 표할 수 있는 유일한 경의는 서로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일이다(‘강은 노래하고 푸른 용은 춤추네’). 하나뿐인 손으로도 ‘나’는 ‘너’에게 감자를 구워주고 시를 써주고 종이배를 접어줄 수 있다. 우리가 손을 내민다면 그 손은 한 개에서 두 개가, 두 개에서 열 개가 된다. “성에 낀 영혼”을 따뜻하게 안아줄 서로의 손(‘손’). 그때 시는 우리에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깊은 밤 “심장 제일 가까운 곳”에 켠 노란 불빛 하나(‘초원의 노래’)가 돼 줄 것이다.

시집은 ‘시인의 말’, 1부 ‘당신이 있어 세상이 참 좋았다’, 2부 ‘어린 물고기들과 커피 마시기’, 3부 ‘바람은 어디로 가나’, 4부 ‘눈사람은 눈사람을 사랑하였네’, 산문 ‘강은 노래하고 푸른 용은 춤추네’로 구성돼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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