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못 뵙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께서도 아버지 젊어서 돌아가셨다 합니다. 계모님 밑에서 자라난 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늘 외로워 보이시고 저도 그런 아버지를 닮았음을 나이가 들고서야 깨달았습니다.

대신에 외갓집에는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당당히 계셨습니다.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 전부 학교 선생님한테 시집 장가 보내서 가난한 외손자 외손녀들이 방학 때마다 달려들어 하나뿐인 외숙모를 어지간히 괴롭혀 드렸습니다.

겨울에도 외할아버지는 늦게 일어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외손자들끼리 건넌방에 진을 치고 엉겨서 늦잠을 자다 보면, 대빗자루로 앞마당 썩썩 쓸어대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젊어서부터 늘 부지런만 하셨던 외할아버지는 대놓고 혼내지는 않으시면서도 뭐라고 궁시렁 궁시렁 불만 섞인 소리를 하십니다. 눈 비비며 일어나야 합니다. 더 화나시면 큰일이니까요.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보다 더 건강하셨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초파일 앞두고 우물에서 찬물로 머리를 감다 뇌출혈인가로 돌아가시고 나서도 외할머니는 오래오래 삶은 돼지고기 즐겨 드신 덕분에 몸에 살이 다 빠지도록 구순이 다 되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아주 말년이 되셔서는 손자들이랑 화투 치는 걸 좋아하셨는데요, 한 판 한 판 돌 때마다 어찌나 진지하게 몰입을 하시는지 제가 그만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니까요. 젊어서부터 한 번도 ‘경우’ 빠지는 일은 안 하시던 분인데 저랑 화투 칠 때만 그 경우가 가끔씩 빠졌습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생각이 나는 걸 보니 벌써 설날이 가까웠나 봅니다. 설날 가까우면 돌아가실 때 공교롭게도 두 분 다 찾아뵙지 못한 제 못난 날들 생각이 납니다. 외할아버지 때는 머리에 ‘미친바람’이 들어 집에 연락도 끊고 돌아다니고 있었고 외할머니 때도 또 다른 ‘미친바람’으로 사람 아니었습니다.

두 분 살아계시던 북문리 생각이 납니다. 눈이 펑펑 내려 어린 무릎까지 쌓이고 논두렁에 얼음이 얼고 물 가둔 방죽에 썰매 타는 아이들 신이 납니다. 외손자, 외손녀가 두 분 아래로 자그마치 열아홉, 친손자 손녀까지 합하면 자손이 스물 하고도 둘이나 되었습니다. 신나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뵐 것을, 후회 막심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라도 계셔서 다행천만이지요. 일가붙이 하나라도 아쉬운 세상입니다.

눈도, 흰떡국도, 백설기도 모두 하얀 설날이 옵니다. 하얀 사랑이 그리운 때입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권정찬<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