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귀연 수필가

물루의 걸음걸이는 도도하고 아름답다. 턱을 약간 쳐들고 ‘S‘ 라인의 몸매를 유지하는 폼은 거의 환상적이다.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시키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백조의 호수’의 발레리나다. 식사할 때도 고급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귀부인처럼 우아하다. 아무리 맛좋은 음식이라도 금방 달려드는 일이 없다. 천천히 다가와선 혀로 조금 맛을 본 후 잠시 뜸을 들였다 느긋하게 먹는다.

반면 남편이 좋아하는 시지프는 수컷이다. 정확한 혈통을 알 수 없는 호랑이 무늬 빛으로 치장한 녀석이다. 시지프는 우둔하다 못해 미련스럽다. 물루와 시지프가 어떻게 동일한 고양이 과(科)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애교를 떨며 시도 때도 없이 내 곁으로 와서 교태를 부린다. 교양 없이 함부로 날뛰고 걷는 모습은 꼭 오리가 뒤뚱거리는 것 같다. 음식을 주면 게걸스럽게 다먹어치우곤 배탈이 나서 병원신세를 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암컷인 물루는 청회색 빛 털이고운 미모의 러시안 블루이다. 물루의 도도함은 훌륭한 혈통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싫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주인인 내가 가까이 가려해도 언제나 거리를 둔다. 마치 속만 태우는 짝사랑 같다. 새침데기이고 깐깐해서 여간해선 정을 주지 않는다. 물루는 조금만 수가 틀려도 발톱을 세우고 나를 할퀸다. 요즘의 내 몸에 난 상처는 모두 물루의 짓이다. 물루는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결코 인간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아니 인간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물루의 그런 교만이 좋다.

물루와 시지프는 작년 여름, 우리 집으로 입양되었다. 외국으로 나가게 된 딸이 같이 데리고 있던 녀석들을 강제로 떠맡긴 것이다. 그때까지 짐승을 키워보지 않았던 터라 거절했지만 키워보면 정이 들 거라며 막무가내로 두고 간 것이었다. 처음엔 먹이를 챙겨주랴 목욕시키랴 병원에 데려가랴 성가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

물루와 나는 많이 닮았다. 나는 성격이 깔끔하여 매사가 반듯하고 내성적이라 쉽게 다른 사람과 친화하지 못한다. 그런 탓에 친구도 별로 없고 바깥나들이도 자주가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두루뭉술하다. 대인관계가 원만해서 친구도 많을 뿐 아니라 매사가 낙천적이다. 도대체 남편은 고민이 없는 사람 같이 보인다. 부부싸움을 하려고해도 남편이 먼저 웃고 말아서 싸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은 두 녀석이 장난치다 문갑위에 놓인 어항을 건드려 깨뜨린 적이 있었다. 방안에 물이 넘쳤고 어항속의 금붕어가 방바닥에 파닥거렸다. 내가 달려갔을 때 물루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두어 발짝 물러나 예의 그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시지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종아리를 파고들었다. 물루는 어항을 깨뜨린 것에 대해 반성도 하지 않고 또,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던진 걸레를 슬쩍 피하기까지 하면서.

심한 독감을 앓은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약을 복용하다보니 비몽사몽,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제법 헛소리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문득 깨어나니 발치에 물루가 앉아 있었다. 시지프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는 물루가 제 주인이 아프니까 측은지심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녀석을 껴안아 주려고 가만히 다가갔다. 그러나 물루는 한 발짝 물러서며 포옹을 허용하지 않았다. 얄미운 녀석! 못이기는 척 한번 안겨주면 어때서.

오늘도 두 녀석은 방 안을 뛰어다니며 저희들끼리 재미있게 논다. 어쩌면 세상은 한 가지 색깔로만 살아지진 않을 것이다. 교향악처럼 여러 다양한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배려할 때 아름다운 공동체는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물루는 여전히 도도하고 시지프는 우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