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알아 봤자 좋을 게 없거나 위험한 비밀을 가리키는 말이 ‘판도라의 상자’다. 그 유래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다. 신들의 우두머리였던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불을 준 것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를 이용해서 인간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로 했다.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에게 진흙으로 여자를 빚으라고 명령했다. 그 여자에게 제우스는 생명을,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헤르메스는 말솜씨를, 아폴론은 음악의 재능을 주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 바로‘판도라’였다. 판도라를 본 에피메테우스는 첫눈에 반했다. “신들이 주는 선물을 좋아하지 마라. 반드시 뭔가 꿍꿍이속이 있을 거야.” 형 프로메테우스가 이처럼 주의를 주었지만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를 아내로 맞이했다. 제우스는 판도라를 보내면서 작은 상자 하나를 주었다. “이것은 신들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절대로 열어 보면 안 된다.”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판도라는 문득 그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절대 열어 보지 말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궁금했다. 판도라가 상자의 뚜껑을 연 순간, 욕심, 시기, 원한, 질투, 복수, 슬픔, 미움 등의 재앙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상자 뚜껑을 닫았을 때 그 안에 남은 것은 딱 하나, 희망이었다. 그것을 안 판도라는 희망을 꺼내 주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희망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유래로 사람들은 알아 봤자 좋을 게 없거나 위험한 비밀을 가리켜 ‘판도라의 상자’라고 부르게 됐다.

정치권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으로 비견될 만한 사건이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1심에서 징역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이 모두 발칵 뒤집혔다. 선출직 공무원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징역형이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따라서 이날 1심 판결이 상급심에서 확정되면 김 지사는 지사직을 잃게된다. 김 지사는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 무렵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당선 등을 위해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한 불법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특검팀은 김 지사가 2016년 11월9일 드루킹이 운영하는 느릅나무 출판사를 찾아 ‘킹크랩’초기버전의 시연을 본 뒤 본격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승인한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킹크랩을 이용한 드루킹 일당의 조직적인 댓글조작을 충분히 인식했으며, 더 나아가 작업할 기사목록, URL 등을 주고받으며 댓글 조작을 지속적으로 승인·동의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일명 ‘촛불혁명’으로 새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가 댓글조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현 정권의 정당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 야권은 벌써부터 특검을 요구하며 정국주도권을 휘두를 태세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였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31일 자신이 최대 피해자임을 웅변하면서 드루킹사건 추가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 추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에 김 지사는 판결 직후 변호인을 통해 “재판장이 양승태와 특수관계”라며 “진실을 향한 긴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말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판결을 내린 재판장을 ‘사법농단 세력’으로 규정하고, 일각에서는 판사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

가뜩이나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등으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국정지지도가 낮아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드루킹 사건은 결코 열려서는 안될 ‘판도라의 상자’가 느닷없이 열린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