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오늘 같은 세상에 참 쓸모가 많다.

유튜브가 선사한 새 세상 가운데 하나가 무당들 세상이다. 무당이라면 신비롭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고 그보다 미신이라거나 천하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곳에 가도 무당 없는 곳 없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아니면 별종 세계 사람인 듯 취급하기 일쑤인 것이다. 그런데 유튜브가 이 세계를 세상 속으로 들여왔다. 어느 날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 보니 용하다는 점집 찾아가 점 보는 과정을 고스란히 유튜브에 올려 놓는‘채널’이 있더라는 말씀이다.

주위에도 사주 명리를 공부한 사람들은 꽤 많았다. 당신들 인생에 뭔가 답답하고 막힌데가 있다고 생각하던 끝에 ‘운명’에 관심이 꽂혀 도대체 왜 그런가를 골똘히 궁리한 끝에 명리학적 사유에 도달한 것이다. 그분들 말씀, “사주 도둑질은 하지 못하는 법”이라던가. 그런데 이렇게 ‘철학’으로 운명을 보는 것과 ‘신점’은 아주 다르단다. 명리는 연월일시, 사람이 세상에 날때 가지고 나온 네 기둥을 가지고 보는데 반해, 신점은 그야말로 ‘신’이 영매라 할 무당에게 그가 누군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바로 알려준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도중에 끊고 편집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런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세상에는 과학이라는 것으로 못 보는 게 많은데, 칼 융에 의하면 그것은 아직 전모를 모르는 것일 뿐,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무당은, 아니 ‘무’는 “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것처럼 세속화 된 뜻도 다시 없을 것 같다. 무당은 귀신을 섬기는 게 아니라 ‘신’을 섬긴다. 귀신과 신이 뭐가 다르랴 하겠지만 확실히 무당들은 영험한 능력을 보유한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과 죽음 이후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산 자에 기대거나 괴롭히는 귀신을 구별한다. 또 옛날부터 ‘귀’와 ‘신’을 구별해 보는 전통이 있었음을 상기해 볼 수 있다.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는 ‘무’를 한갓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한국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무(巫)’를 숭상했으며 무당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존재였다. 근대 국학자들은 무당에서 제정일치 시대의 지혜로운 통치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바, 그들은 신을 통하여 인간 세계가 처한 상황을 예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과연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마음은 한갓 육체에 깃들인 것, 뇌수의 작용일 뿐인가, 아니면 육체와 다른 초월적인 기원을 갖고 있고 또 사후에는 다시 육체와 분리되어 초월적 세계로 돌아가는가? 어렸을 때는 전통적 사고에 따라 귀신을, 신을 믿었다. 젊어서는 인간을 물질적으로 인식하려 했다. 이제 또 생각하면 정신이라 부르는 것, 마음, 또 혼, 영혼은 어쩐지 육체에 기생한다기보다 이원론적 기원을 갖는 것 같기도 하다.

삶은 신비롭다. 삶 너머도 신비롭다. 유튜브가 끌어들인 ‘무’를 통해 삶과 그 저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