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 페이퍼를 전달하기 위해 부모들이 떼 지어 5층 건물 벽을 타고 오릅니다. 가난의 굴레를 아이들이 벗어났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이지요. 인도 뉴델리의 빛과 어두움이 교차하는 곳에서 일하던 엘리트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사무실은 문만 열면 빈민 지역으로 나갈 수 있는, 부자들의 거리와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벽 너머 사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수가타 미트라 박사에게 번쩍 영감이 떠오릅니다. 사무실 한쪽 벽에 구멍을 뚫기 시작하지요. 가난한 아이들이 득실거리는 그 벽입니다. 구멍에 컴퓨터를 설치합니다. 밖에서 보면 모니터가 보이지요. 작은 구멍 하나를 더 뚫어 마우스를 쓸 수 있게 하고 키보드를 밖에서 조작할 수 있게 만듭니다. 벽 속의 구멍(Hole in the wall) 프로젝트의 시작입니다.

아이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벽에 뚫린 구멍 속 컴퓨터를 보고 벌떼처럼 몰려들지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것 저것 만지기 시작합니다.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이 켜지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합니다. 몇 달의 시간이 흐릅니다. 수가타 박사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경험을 합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탐색하고 음악이나 영화를 보고 심지어 메일 계정을 만들어 편지를 나누기까지 한 겁니다. 서로 자신이 깨달은 바를 나누고 토론하며 배운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피드백 시스템이 주어지자 이들은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필요한 모든 지식을 흠뻑 빨아들였던 것이지요. 수가타 박사는 온몸에 전류가 흐른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정말 놀랐지요. 영어를 전혀 배우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아이들이 프로세서라는 표현을 하는지, 마우스라는 단어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요.”

가난한 지역에서 못 배운 아이들도 불과 3개월이면 도시의 정상 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따라잡을 만큼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을 토대로 수가타 박사는 학습자 스스로가 자신을 가르치고 공동체가 서로를 가르치는 시스템 연구에 매진합니다.

누군가는 벽을 보며 절망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벽에 구멍을 뚫습니다.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을 실천합니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갑니다. 저도 클래식북스를 통해 오늘도 고전이라는 창문 하나를 뚫습니다. 이후의 일은 걱정하지 않기로 합니다. 일단 고전을 한 벗 맛본 사람들은 이전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늘 경험하기 때문이지요. /조신영 생각학교ASK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