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해는 바뀌었지만 사회는 그대로다. 해가 바뀌면 사회도 바뀔 거라고 생각할 만큼 순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최소한의 희망을 가져보았다. 하지만 역시 해만 바뀌었을 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화의 조건을 생각해본다. 분명한 것은 그 조건에서 시간은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시간만 흐른다고 뭔가 변화하리라는 기대는 너무 공상적인 이야기이다.

문제는 역시 사람이다. 사람이 그대로인 상태에서는 어떤 상황이 변하기는커녕 더 악질적으로 고착화된다. 이런 현상은 교육, 정치, 경제 등 사회 전 분야에서 확인되고 있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분야 중 어느 곳 하나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대통령은 성과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말 “글쎄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역시 사람이다.

사람! 도대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에 대해 철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등 많은 분야에서 연구가 이루어졌고, 저마다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것을 찾아 읽어보았지만 필자는 아직도 사람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오묘한 것이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많은 이야기 중 필자의 마음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 내용이 있다. 중국 회남자(淮南子)에 적힌 말이다. “물체엔 기(氣)는 있으나 생(生)이 없다. 초목은 생은 있으나 지(智)가 없다. 동물은 지가 있으나 의(義)가 없다. 사람은 기도 있고, 생도 있으며, 지도 있고, 또한 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다.” 솔직히 이 말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사람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 무엇인지는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사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 생, 지, 의를 다 갖추는 것이다. 여기서 이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깊이 있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과연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앞의 네 가지 중에서 몇 가지나 진정으로 가지고 있을까?

‘다시’(박노해 시인)라는 시가 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중략)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중략)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필자는 사람에 대한 의미가 흔들릴 때마다 이 시를 읽는다. 그리고 이 시의 내용처럼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현실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라는 말이 더 옳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그 답은 1월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교육의 목표는 분명 앞의 시 ‘다시’의 마지막 행에 나온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에 대한 방법을 찾는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그 희망을 아이러니 하게도 교육이 죽이고 있다. 1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이 학원에서 오로지 점수를 위한 기계가 되어버린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과연 우리는 희망을 말 할 수 있을까. ‘미래교육’이니 뭐니 하는 말로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 고문을 해서는 안 된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 “점수만이 희망이다!”라고!

방학과 학원이 동의어가 되어버린 이 아픈 현실을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나는 아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교사나 학부모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이들이 학원에 있을 동안 과연 이 나라 교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몬도가네”라는 말이 있다. “기이한 행위, 특히 혐오성 식품을 먹는 등 비정상적인 식생활을 가리키는 단어. 1962년 세계 각자의 엽기적인 풍습을 소재로 한 이탈리아 영화 ‘몬도 카네’(Mondo Cane: 이탈리아어로 ‘개같은 세상’)에서 나온 단어” 몬도가네야 말로 지금 우리 교육에 제일 적합한 수식어가 아닌가 싶다.